김화순 시인 / 구름출판사
목울대에 걸린 시간이 안개로 풀리는 날, 놓친 꿈과 못다 한 말은 구름이 되지요 나 혼자 중얼거린 말은 회색차일구름으로 떠돌고요 속울음 들킨 비늘구름은 밤비 되어 내리지요 나의 한숨은 누구의 발목을 적시는 비층구름 될까요
흩어지다 뭉치다 흐르다 흘러내리는 편애의 흔적들이, 제 안의 새털구름을 꺼내 든 물푸레나무가 푸릇푸릇 움트는 날입니다 당신이 떠나며 가슴 아래쪽에 걸어둔 말들 매지구름 되었나 봐요 머리 위를 맴돌다 서쪽으로 번지네요 저 두루마리구름은 누구의 가슴을 풀어낸 눈시울 붉은 편지일까요
나는 못다 한 말이 많은 편집증에 걸린 편집자 그래서 구름출판사 하나 차렸지요 매일 흘림체의 구름을 살피고, 접힌 구름 사이에 숨어있는 젖은 새들의 안부를 묻고, 흩어진 물방울을 채집하고 여기저기 떠도는 구름의 행간을 수소문해요 구름이 누설한 비릿한 말과 한쪽 귀가 접힌 시간을 번역하며 놀아요 뜬구름 잡는 책을 편집 중이지요
-시집 『구름출판사』에서
김화순 시인 / 물꽃
물고기의 한숨이 물의 옆구리를 간질이면 수면 위에 접시꽃 한 송이 피어난다
물새가 긴 부리로 허기를 저울질 해도 호수는 방긋, 꽃을 피운다
빗방울 손가락이 물의 앙가슴을 툭툭 친다 잘 아문 상처들 오소소 피어난다
수없이 저물다 어둠 아래서 피어난 말들 둥글게 번진다 출렁이던 그리움은 물그림자가 되는 걸까
물 아래서 헛발질한 시간이 파종한 물꽃 물이 받아만은 나뭇잎과 세 떼의 울음과 달 그림자, 별빛....
구름처럼 피었다 사라지는 단단한 물의 지문
-시집 『구름출판사』에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탁번 시인 / 하관 외 1편 (0) | 2023.02.03 |
---|---|
이덕주 시인 / 오! 양심 외 1편 (0) | 2023.02.03 |
전기철 시인 / 누이의 방 외 1편 (0) | 2023.02.03 |
정희성 시인 / 민지의 꽃 외 1편 (0) | 2023.02.03 |
김개미 시인 / 재의 자장가 외 1편 (0) | 2023.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