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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하영 시인 / 들풀에게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28.

하영 시인 / 들풀에게

 

 

한때는

꽃이 되고 싶었다

 

사막의 꽃처럼

뒤틀린 아픔 속에서도

살면서 만나는 고난도

진한 향기가 된다고 믿었다

 

꽃으로 살아갈 수 없는

얼어붙은 계절에도

홀로 일어서는 깃발처럼

밤새 눕지 못하는

생의 투지

화려한 이름 하나

욕심 내지 않고도

그대 삶이

꽃보다 아름답다

실은 눈물 나게 향기롭다

 

 


 

 

하영 시인 / 분반좌分半座 그늘 아래

 

 

기축년 윤오월

황포돛배 타고 낙화암 간다

마음 급한 코스모스 앞세우고

틈새마다 끼어 있을 부여융의 허리끈 찾으러 간다

고란수 한 잔, 청해 달게 마시고

말없는 백마강, 말없이 내려다본다

의자왕도 태자 융도 일만여 명의 백성과 소정방도

아득한 저쪽 세월로 봉인된 시간 속에

말없이 묻히고

흔적 또한 찾을 길 없다

황포돛배에 몸 싣고 구드래 나루터로 돌아오는 길

온갖 설움들 모여

향기롭게 꽃을 띄운 강물 위에

햇빛이 마른자리를 내어 준다

그 옛날 그 분이 다자탑전(多子塔前)에서

흔쾌히 자리를 내어 주시듯

그리움의 발자국 수없이 난 길을 걸어

궁남지 연밭길 에돌아 나오니

하얀 꽃잎마다 인욕선인이 가부좌 틀고 앉아 계신다

그 분이 내어주신 분반좌(分半座) 그늘 아래

안타까운 마음길만 내려놓은

기축년 윤오월

 

 


 

하영(河泳) 시인

1946년 경남 의령 출생. 창신대(昌信大) 문예창작과 졸업. 1989년 계간 『문학과 의식』 신인상으로 등단. 2000년 <아동문예문학상> 수상으로 동시 등단. 시집: 『너 있는 별』 『빙벽 혹은 화엄』 『자귀꽃 세상』 『햇빛소나기 달빛반야』 등. 동시집 :『참 이상합니다』 『꽃밥 한 그릇』, 인도순례기 :『천축 일기』, 남명문학상, 마산시문화상, 경남아동문학상, 시민불교문화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