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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한지혜 시인 / 향불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3. 7.

한지혜 시인 / 향불

 

 

떠오르는 얼굴이여

고사리 하얀 두 손 모으니

크신 자비의 숨결로 이어져

홍조 띤 그대 얼굴

수줍어 고개 숙여 오면

 

목어소리 바람결에 스쳐가고

홀로서 피어나는 연꽃

연꽃들 사이

사랑이 익다

다시 낙화되어 흐르는

중생(衆生)의 아픔이여

 

 


 

 

한지혜 시인 / 두 번째 벙커

 

 

한 뼘도 안 되기 한 줄로 서 있기

하나의 팔베개에서 일어나

 

뻐꾸기 울었다

 

작은 창문 벙커 같다

벙커 안 풍경이 한 개씩 늘어 갈 적마다

 

뻐꾸기 울었다

 

앉으면 방석이 되고 쌓아 놓으면 벽이 되는

책과 방바닥 5월에서 6월로 가며

 

뻐꾸기 울었다

경계 없는 문에서 생각이 멈췄다

 

무거운 울음 바깥에서 안으로 흘러내렸다

허기보다 가벼운 온기

 

두 번째 창에 이마를 대고

뻐꾸기 울었다

 

 


 

 

한지혜 시인 / 도시의 여자

 

 

나는 너의 팔에 눕는다

너는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너의 숨소리를 듣는다

 

나는 편히 다리에 눕는다

너의 팔이 머리를 감싸고

나의 팔을 너의 허리에 놓았다

 

내 눈 위의 작은 창에는 너의 팔과 내 팔의 교차로가 보인다

 

너는 나에게 이불을 덮어 준다

나는 발가락만 빼놓았다

언제든 빠져나갈 구멍이니까

 

다리가 저려올 때

교차로처럼

 

나는 너의 다리를 베고 잠이 들었다

 

 


 

한지혜(韓智慧) 시인

1955년 인천광역시 대청도에서 출생. 아호는 초우(艸友), 또는 운서(雲瑞), 1980년 월간 《신세계》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마음에 내리는 꽃비 』(한누리미디어, 1998)와 『차와 달의사랑노래』(소리들, 2005),  『두 번째 벙커』(시산맥사, 2015) 『모든 입체들의 고독』이 있음. 2014년 시흥시문화예술발전기금 수혜. 갯벌문학 작가상 수상. 불교문인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시산맥시회 특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