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혜 시인 / 향불
떠오르는 얼굴이여 고사리 하얀 두 손 모으니 크신 자비의 숨결로 이어져 홍조 띤 그대 얼굴 수줍어 고개 숙여 오면
목어소리 바람결에 스쳐가고 홀로서 피어나는 연꽃 연꽃들 사이 사랑이 익다 다시 낙화되어 흐르는 중생(衆生)의 아픔이여
한지혜 시인 / 두 번째 벙커
한 뼘도 안 되기 한 줄로 서 있기 하나의 팔베개에서 일어나
뻐꾸기 울었다
작은 창문 벙커 같다 벙커 안 풍경이 한 개씩 늘어 갈 적마다
뻐꾸기 울었다
앉으면 방석이 되고 쌓아 놓으면 벽이 되는 책과 방바닥 5월에서 6월로 가며
뻐꾸기 울었다 경계 없는 문에서 생각이 멈췄다
무거운 울음 바깥에서 안으로 흘러내렸다 허기보다 가벼운 온기
두 번째 창에 이마를 대고 뻐꾸기 울었다
한지혜 시인 / 도시의 여자
나는 너의 팔에 눕는다 너는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너의 숨소리를 듣는다
나는 편히 다리에 눕는다 너의 팔이 머리를 감싸고 나의 팔을 너의 허리에 놓았다
내 눈 위의 작은 창에는 너의 팔과 내 팔의 교차로가 보인다
너는 나에게 이불을 덮어 준다 나는 발가락만 빼놓았다 언제든 빠져나갈 구멍이니까
다리가 저려올 때 교차로처럼
나는 너의 다리를 베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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