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맹 시인 / 나는 잘못 읽는다
나는 지금 帝釋寺로 올라갑니다. 아름드리 천도나무 길 양켠으로 늘어선 제석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디에도 길은 없느니 없는 길 반대편을 돌아 눈 덮인 겨울산을 타고 제석사로 올라갑니다. 타고 온 낙타는 生으로 뜯어먹고 올라갑니다.
제석사로 들어서려면 우울한 오동나무 숲과 일어붙은 폭포를 세 개나 타고 올라야 합니다. 어디에도 길은 없으니 언 두 다리를 버리고 붉은 기호새들 짝짓기 놀이하던 눈 발자욱 따라 제석사 대웅전으로 간신히 올라갑니다. (권력의 칡넝쿨이 이 글 쓰는 내 뱀 목구멍에서 쑥쑥 자라나옵니다.)
제석사 대웅전에는 있는 것만 있습니다. 있을 것도 있겠지만 그것은 산신각에서나 있는 것입니다. 삼천번 泣하면 좌측 세번째 탱화에서 비밀문이 열리고 황금 두루마리 흰 옷 입은 미륵불께서 휘리릭 던져주십니다. 중국 무술 영화 많이 보셨다면 더 은유 쓰지는 않겠습니다. 늘 제석사는 흔한 상상입니다.
불 켜십시오. 황금 두루마리 펴서 읽겠습니다. 그러나 제석사에서는 아무것도 잃히지 않습니다. 손가락 짚어 천천히 읽어도 잘못 읽습니다. 마른 물고기 앞세우고 제석사 경 내를 몇 바퀴 돌아도 이 글을 쓰는 나는 묵시록의 성 요한이 아니니 황금 두루무리에 무엇을 적어야 할지 무엇을 읽어야 할지 번개처럼 초조합니다. 헛 기침 할 때마다 낙타 한 마리씩 목구멍에서 튀어나옵니다.
아름드리 천도나무 길 양켠으로 늘어선 제석사가 허구라면 황금 두루마리 잘못 읽는 나는 잘못 읽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오늘도 다시 제석사로 올라가며 씁니다. 황금 두루마리가 허구이듯 잘못 읽는 나도 어차피 허구입니다. 목구멍에서 튀어나온 핏덩이 낙타 다시 다 뜯어먹고 허구의 숲과 폭포를 지나 한 허구가 다시 허구의 황금 두루마리 제석사로 올라갑니다. 나는 잘못 쓰고 나는 잘못 읽습니다.
노태맹 시인 / 황금이 들끓는 용광로에 당신의 어린양이 -불의 레퀴엠 6
보소서! 금속의 뜨거운 화염 속으로 한 아이가 떨어졌나이다. 황금이 들끓는 용광로라 한들 무엇이 달라졌겠나이까? 꿈은 때때로 검은 재가 되기도 한다 한들 그것이 푸른 나무에게 무슨 위로가 되겠나이까? 금속의 뜨거운 쇳물 속으로 한 아이가 떨어졌나이다. 기름 속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이 튀어 오르는 순간처럼, 그가 보았을 마지막 풍경이 날카롭게 우리의 심장을 찌르나이다. 황금이 들끓는 용광로라 한들 누가 그를 황홀이라 이름 하겠나이까? 우리의 노래는 노래가 되지 못하고, 통곡은 입술에서부터 불타오르나이다.
그를 우리 앞에 현현顯現케 해 주소서. 완벽하게 사라진 죽음을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하니 그를 우리의 이 노래로 이별케 해 주소서.
그를 우리 앞에 현현顯現케 해 주소서. 불의 몫이 아닌 물과 공기의 몫만이라도 와서 그와 우리의 이 물 노래로 이별하게 해 주소서.
오, 황금으로 들끓는 불멸의 꿈이여, 살과 뼈조차 다 녹여버리는 노동 없는 노동이여, 온 세상이 신전神殿인 무릎 꿇린 노동자여,
보소서! 황금이 들끓는 용광로 앞에서 우리는 물의 기억도 없이 소멸하고 있나이다. 이곳이 마치 영원한 것처럼, 이 불이 마치 영원한 것처럼 그렇게 기다리고 있나이다. 금속의 뜨거운 화염 속으로 한 아이가 떨어지고, 우리의 노래는 곡조를 잃은 화염처럼 이리저리 펄럭이나이다. 보소서! 보소서!
-2022년 제7회 사이펀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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