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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광재 시인 / 그 열차에는 슬픔이 타지 않는다

by 파스칼바이런 2023. 3. 9.

이광재 시인 / 그 열차에는 슬픔이 타지 않는다

 

 

차가 없기 때문이었다

노조의 태업으로 열차가 지연되었고

늦어진 열차로 사람들이 밀려들었고

먼 외곽에서 오던 A는 숨이 막혀 그만

승강장으로 빠져나왔다

혼자서 택시를 타지 못하는 A는

숨을 헐떡이며 새어나오는 눈물을 막으며

다급히 B에게 연락하였으나

B에게도 차가 없었고

기다림으로 가득 찬 거리를 뚫고 갈 방법이 없었다

다시

노조의 태업으로 지연되는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아무도 오지 않는 광장의 형광등 빛이

사방에 부딪히다가 부서지다가

마침내 작은 숨 그늘까지 비집고 들어왔을 때

A는 결국 길을 잃고 말았다

 

방송에는 열차 운행 정상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는

입력된 목소리가 반복되고 있었다

 

마침내 A와 B가 만나 슬픔을 나누는 동안

열차를 탈 필요가 없던 사람들과

열차를 타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은

 

노조가 태업을 했는지 왜 했는지

알지 못했고 관심이 없었고

 

먼 나라의 전쟁 이야기처럼

한 줄의 짧은 텍스트로 지나가는 사건들처럼

누가 울었는지 누가 다쳤는지

무엇이 상처가 되었는지

 

슬픔을 아는 사람들만

다시 슬픔을 나누어 먹으며

 

새벽의 안개로 낮게 깔리고 있었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1월호 발표​

 

 


 

이광재 시인

1992년 서울 출생. ​홍익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교육행정직공무원. 2022년 《포엠포엠》 작품공모 신인상(가을호) 등단, 저서로는 시 창작 입문서 『지금 이 순간이 시가 될 수 있다면』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