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 시인 / 그 열차에는 슬픔이 타지 않는다
차가 없기 때문이었다 노조의 태업으로 열차가 지연되었고 늦어진 열차로 사람들이 밀려들었고 먼 외곽에서 오던 A는 숨이 막혀 그만 승강장으로 빠져나왔다 혼자서 택시를 타지 못하는 A는 숨을 헐떡이며 새어나오는 눈물을 막으며 다급히 B에게 연락하였으나 B에게도 차가 없었고 기다림으로 가득 찬 거리를 뚫고 갈 방법이 없었다 다시 노조의 태업으로 지연되는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아무도 오지 않는 광장의 형광등 빛이 사방에 부딪히다가 부서지다가 마침내 작은 숨 그늘까지 비집고 들어왔을 때 A는 결국 길을 잃고 말았다
방송에는 열차 운행 정상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는 입력된 목소리가 반복되고 있었다
마침내 A와 B가 만나 슬픔을 나누는 동안 열차를 탈 필요가 없던 사람들과 열차를 타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은
노조가 태업을 했는지 왜 했는지 알지 못했고 관심이 없었고
먼 나라의 전쟁 이야기처럼 한 줄의 짧은 텍스트로 지나가는 사건들처럼 누가 울었는지 누가 다쳤는지 무엇이 상처가 되었는지
슬픔을 아는 사람들만 다시 슬픔을 나누어 먹으며
새벽의 안개로 낮게 깔리고 있었다
웹진 『시인광장』 2023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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