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산 시인 / 그리워라 애니 로리
말하자면 나는 옛날 거닐던 강가 안개와 바람을 먹이는 한 마리 검은 짐승 제 발자국 안에 다시 제 발자국을 세기며 걷는 천천히 눈 멀어가는 저격수, 함께 나부낄 깃발 하나 없이 혼자 펄럭일 때면 먼 기항지를 향해 암 부호를 타전하는 퇴락한 적성국가의 스파이
석양이 깊어지면 갈매기 잠드는 술집 데킬라 병 흔들며 불춤 추는 과묵한 바텐더가 되고 싶었지, 낡아빠진 난수표를 말아 담배를 피우며 33과 3분의 1 빠르기 턴테이블 돌리며 그리워라 애니 로리 흘러간 결사의 노래나 흥얼대는 말하자면, 나는 흰 머리칼 애니 로리 옛날 거닐던 강가는 옛날에 다 잊었지
리산 시인 / 인디 시인에게 무상급식을
은빛으로 빛나는 돔 아래 작은방에 있는 듯했지 세계의 지붕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저기 어느 나라에는 지붕 마이스터라는 직업도 있다 하네
나는 무슨 애이불비의 마이스터가 되어 휴가의 마지막 밤 센티멘털 노동자들은 어떤 노래를 듣나 태생이 계면조인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를 듣는 밤 이제는 문을 닫고 추억 속으로 사라져간 배고픈 저녁이면 찾아가던 밥집과 화덕에 불을 피워 음식을 내던 식당과 지난해 마지막 눈을 바라보던 나무 창문 안 자리와
나는 무슨 측은지심의 마이스터가 되어 생각하네 미열에 시달리는 토요일 저녁 서랍 속 마지막 아스피린도 떨어지고 으슬으슬 해열제를 찾아 거리로 나서면 세상엔 온통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사람들 사람들
그럴 때 당신은 어떡하나 나는 무슨 센티멘털의 마이스터가 되어 불멸의 좌파에게 맥주를 부어주던 밤들이 자꾸 생각나 테이블에 올라가 장미꽃 마술을 부리던 모나리자의 얼굴에 수염을 그려 넣던 아무것도 아닌 자들의 아무것도 아닌 고독이
비무정 비슬픔 비애인 셀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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