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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임준진 시인 / 헌 신발의 시선

by 파스칼바이런 2023. 3. 15.

임준진 시인 / 헌 신발의 시선

 

 

긴 가뭄이 지나 빗길을 걸었을 때

신발 밑창이 터진 걸 알았다

 

모두가 우산을 쓰고 걷는 고요한 골목길

 

서서히 번져오는 축축함이

찝찝함이 되어 얼굴까지 전해질쯤

아무렇지 않게 고양이 한 마리 지나간다

 

일상처럼

 

우산 없는 당신도 지나간다

 

신발을 벗어 발을 씻고

새 양말을 신었을 때

찝찝함은 사라진다

 

창밖 너머 고양이와 당신은

애초에 찝찝함 따위 모르는 맨발이 편해

젖은 땅과 한 몸이라는 걸

 

터진 신발이 먼저 알고

신발장에 움츠려

측은한 눈빛으로 말을 걸어온다

 

빗길을 걸을 땐 가끔

고개를 숙여 보라

 

웹진 『시인광장』 2023년 1월호 발표

 

 


 

임준진 시인

1992년 서울 출생. 2018 계간《포엠포엠》으로 등단. 동국대학교 식품산업관리학과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