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진 시인 / 헌 신발의 시선
긴 가뭄이 지나 빗길을 걸었을 때 신발 밑창이 터진 걸 알았다
모두가 우산을 쓰고 걷는 고요한 골목길
서서히 번져오는 축축함이 찝찝함이 되어 얼굴까지 전해질쯤 아무렇지 않게 고양이 한 마리 지나간다
일상처럼
우산 없는 당신도 지나간다
신발을 벗어 발을 씻고 새 양말을 신었을 때 찝찝함은 사라진다
창밖 너머 고양이와 당신은 애초에 찝찝함 따위 모르는 맨발이 편해 젖은 땅과 한 몸이라는 걸
터진 신발이 먼저 알고 신발장에 움츠려 측은한 눈빛으로 말을 걸어온다
빗길을 걸을 땐 가끔 고개를 숙여 보라 고
웹진 『시인광장』 2023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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