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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기범 시인 / 어느 날

by 파스칼바이런 2023. 3. 15.

이기범 시인 / 어느 날

 

 

눈물겹게도

얼음감옥이 풀리네

풀은 저항이 힘들고

작은 구름들 멈춘 채

바람도 없이 흔들리는데

그날

그렇게

얼음감옥이 풀리네

긍휼이 살다간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세상은

가만 놔두질 않고

자본은

그림자처럼 따라와

등을 떠미네

얼음감옥은

떠다 밀린 사람들로 가득하고

비명은

구공탄 불꽃처럼 가혹하네

붉네

얼음감옥에선

봄을 기다리는 것도 사치일 뿐

아버지가 한 줌 재로

풀풀 날리는

그날

그렇게

얼음,

감옥에서 풀리네

새살스러운 봄이 왔네

 

-시집 『청설모와 놀다』에서 2017.

 

 


 

이기범 시인

1966년 전남 담양에서 출생. 1994년 근로자문화예술제 시부문 당선. 2002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시집으로 『땅속의 방』, 『청설모와 놀다』가 있음. 현재 〈빈터〉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