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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심수자 시인 / 장대높이뛰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3. 25.

심수자 시인 / 장대높이뛰기

 

 

달려온 길, 더듬어 볼 궤적이 없으니

가벼워지더군요

 

시작과 끝점은

마주할 수 없다는 것 알기에

피어나는 꽃들 더 멀리서 바라보려 했지요

 

도움닫기 없이도 솟구칠 것 같아요

 

쌓여가는 시간과는 모질게도 불협화음이므로

어둠의 변곡점에 이르러서야

새로운 길이 보였죠

 

이쯤이 활주로인듯

두 눈 부릅뜨고 망설임 없이 장대를 꽂아

휨새의 탄력을 받아요

 

온통 어둠뿐인 땅을 짚고 공중으로

힘껏 솟구쳐 보는 거죠

 

뒤틀린 마디마디여도 농익었군요

청명한 하늘아래, 봉숭아 꽃씨는

 

 


 

 

심수자 시인 / 꿈, 상강에 닿다

 

 

분홍을 잃어버린 모랫길

발바닥 뜨겁기만 하다가

목표를 정하지 못한 채, 일보 전진 일보 후퇴

 

제자리 걸음에서 어제의 물음표들이

숨차게 쏟아져 내린다

 

부풀려진 세상 말들을 쫓다가

짧아져 버린 호흡의 길

꿈의 색깔 찾겠다고 허비한 시간들

별빛으로 총총 걸렸다

 

갈색으로 변해가는 잎들 반경 따라

발걸음 옮겨가고 있는 나

 

상강에 서리 내리면

도마뱀 꼬리만큼 남아있던 꿈마저

어디론가 사라진다는 것 아는

눈빛 마른 나뭇가지에

홀로인 새로 앉혀둔다

 

눈꽃가루 휘날리기 전 철새들은 날아가고

또 다시 돌아올 봄날 꿈은

분홍이기를

 

-『감응의 구간 』( 형상시학10집)

 

 


 

심수자 시인

충남 부여 출생. 2014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 형상시문학회, 대구시인협회 회원. 시집으로 『술뿔』 『구름의 서체』 『종이학 날다』 『가시나무 뗏목』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