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시인 / 아홉 살 시인 선언
난 결심했어 시인이 되기로 선생님이 그러는데 시는 아름다운 거래 난 다른 게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이 되겠다는 거야 아름다운 시를 쓰는 사람이 안 아름다울 순 없잖아? 시인에게는 연필과 수첩만 있으면 된대 그게 시인의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무기라는 거야 그 둘만 가지고 세상과 맞서는 거지 아름답지 않니? 백 살까지 쓰고도 남을 연필과 수첩을 모아 두었어 나는 나를 아껴 쓸 거야 자면서도 읽고 쓰고 바라볼 테야 글씨는 작을수록 좋아
이안 시인 / 구석이 되고 싶은 믿는 도끼
나를 믿는다면 말리진 않을게 하지만 그전에 알아 둘 게 있어
네가 한 손으로 들기엔 난 너무 무거워 한쪽은 뭉뚝하고 다른 쪽은 잔뜩 날이 서 있지
딴생각을 하다간 쿵! 발등을 다칠지도 몰라
그런데도 네가 나를 믿는다면 난 할 수 없이 구석이 될 수밖에
네가 외로울 때 찾아와 서성거리다가 가기 좋은
네가 믿는 구석이 될 수밖에
-시집 <기뻐의 비밀>에서
이안 시인 / 새
충주시립도서관 옆 잔디밭 구석진 자리에 새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새가 앉아 있다 날개를 아주 부드럽게 폈다 접었다 하는 것이 깃을 다듬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 먼 곳으로 날아가려고 준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검은빛이 감도는 그 새 곁으로 나는 조용조용 다가갔다 눈치를 챘는가 새가 날개를 접는다 나는 조금 더 몸을 낮춘다 새는 움직일 생각조차 않는다 나는 한 발 또 한 발 가까이 간다 이제 또렷하게 보인다 아뿔싸! 커다란 검정색 새는 순식간에 검정 비닐봉지로 변신해 있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간 걸 후회하며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 검정 비닐봉지가 다시 새로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변신은 하루에 한 번밖에 못 하는 모양이었다 다음 날 그 자리에 다시 가 보고서야 나는 내 짐작이 맞았다는 거러 알았다 검정 비닐봉지가 새가 되어서 어디론가 날아가고 없었던 것이다
-동시집 <고양이의 탄생>(문학동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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