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심 시인 / 대숲
쭉쭉 뻗은 대나무의 비결을 아는지 늘 그 속은 비어 오욕으로 가득 찬 그 누군가 대숲에 들어갔다간 숲 밖으로 던져지지만
마음을 비우고 대숲에 들면 몸이 한없이 가벼워집니다
바람 불 때마다 온몸으로 그 누가 우는소리
대숲으로 대숲으로
푸르름과 올곧음을 보러 갑시다
푸른 댓잎에 귀를 씻고 옵시다
-시집 <북치다, 장구소리 들리다>
김영심 시인 / 북치다, 장구소리 들리다 · 1
둥둥 북을 치듯 나를 친다 내 몸에 담겼던 소리들이 북채를 따라 튀어나온다 오래 묵혀둔 생각을 되새김질 하면 어디선가 허공을 치며 날아오는 저 소리 떼
누군가 채를 잡으면 북과 장구가 따라 울고 바람에 실려 오는 울음소리를 마음이 먼저 받아 읽었다 둥둥 소리가 내 몸을 치고 몸에서 빠져나간 소리들은 허공을 찢으며 사라졌다
끊임없이 솟아나는 생각의 파문들 몸의 나이테를 따라 돌며 내 슬픔도 몸집을 늘렸다 아무리 채를 휘둘러도 소리들은 몸에 갇혀 나오지 않았다 조금씩 나누어 울며 홀로 흐느끼는 법을 배우며 내 북은 점점 자랐다
소리가 빠져나간 빈자리 누군가에게 몸 기대고 싶은 것들이 다시 내게로 와서 텅텅 나를 두드린다
신명나게 북을 치고 돌아서면 뿔에 받힌 듯 온몸이 아프다
세상에서 가장 큰 북은 내 속에 있다
김영심 시인 / 북치다, 장구소리 들리다 · 2
오늘 두 귀는 얼마나 소란했던가 마음을 닫으면 귀도 닫히련만,
슬픈 소리가 낯선 공기방울로 떠돌다 들어와 나를 휘젓는다 창가에 머물다 사라지는 한낮의 봄빛 같은 소리 생은 얼마나 빠르고 가벼운가
보지 말아야 할 것 가지 말아야 할 곳
귀는 입보다 많은 말을 알고 있다 생의 반이 구겨지고 이제 겨우, 나는 듣는 법을 배운다
-시집 <북치다, 장구소리 들리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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