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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가톨릭교회사327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72. 윤지헌 일가의 신앙생활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72. 윤지헌 일가의 신앙생활 윤지충·윤지헌 집안 거의 멸문… 숙부 윤징 정사박해 때 순교 가톨릭평화신문 2021.10.24 발행 [1634호] ▲ 하버드대학교 옌칭도서관 소장 「백가보(百家譜)」에 수록된 윤지충 일가 족보. 파란 색으로 표시된 세 사람의 이름 아래 모두 ‘사주(邪誅)’란 표현이 보인다. 숙부 윤징(尹)도 정사박해 순교자 「남보(南譜)」는 당시 남인 유력 가문의 족보를 모은 책이다. 해남 윤씨 항목에서 윤지충의 이름을 찾으면 윤두서(尹斗緖)의 아홉 아들 중 다섯째 윤덕렬(尹德烈)의 손자로 나온다. 윤덕렬의 아들 윤경(尹憬)에게 다시 두 아들이 있다. 맏이가 윤지충이고, 둘째가 다섯 살 터울의 윤지헌이었다. 다산의 부친 정재원(丁載遠)에게 시집온 아.. 2021. 10. 31.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56)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56)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목가적 풍경 이면에 담겨진 19세기 농민들의 팍팍한 삶 가톨릭평화신문 2021.10.24 발행 [1634호] 프랑스 대혁명 이후 불어닥친 혼란 프랑스 대혁명의 영향은 이탈리아 반도에는 통일을, 교황에게는 교황령의 종식을 가져왔다면, 프랑스에는 어떤 자취를 남겼는지 그로 인해 프랑스 가톨릭교회는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1800년대는 유럽의 모든 나라가 프랑스 대혁명이 남긴 자취로 몸살을 앓았다. 프랑스 대혁명의 3대 이념(자유, 평등, 형제애) 중 하나로 등장했던 자유주의의 영향은 외세의 지배를 받고 있던 국가들에서 민족주의가 고개를 드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 안에선 나폴레옹에 의한 제1 제정이 시작되고, 동시에 그에.. 2021. 10. 28.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56)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비오 9세 교황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56) 무명화가의 삽화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비오 9세 교황’ 세속 권력은 잃고 교황의 영적 권위를 얻은 공의회 가톨릭평화신문 2021.10.17 발행 [1633호] ▲ 칼 벤징거 저, 「1873년 비오 9세 교황에 관해서」에 나오는 ‘1869년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비오 9세 교황’ 삽화 이탈리아 통일 운동과 교황령의 위기 1800년대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 운동(Risorgimento)의 격변 속에서, 그보다 더 큰 격변을 겪은 것은 반도의 정치적인 변화에 따라 운명이 바뀐 교회 국가였다. 그 시기에 성 베드로 사도 다음으로 긴 시기(32년간) 교황으로 재임한 비오 9세(재임 1846~1878)는 1854년 12월 8일 ‘동정 .. 2021. 10. 24.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71. 윤지헌과 고산 저구리 교회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71. 윤지헌과 고산 저구리 교회 고산 저구리 교회 중심 윤지헌, 대역부도 능지처사형으로 순교 가톨릭평화신문 2021.10.17 발행 [1633호] ▲ 초남이성지 바우배기 묘소에서 발견된 복자 윤지헌 프린치스코의 유골. 1801년 9월 17일 전주 남문 밖에서 능지처사형으로 순교한 그의 유골은 경추 2번에 잘린 흔적이 있고, 양 팔꿈치 아래와 두 무릎 아래가 절단되어 사라진 상태로 수습되었다. 참혹한 시신 윤지헌(尹持憲, 1764∼1801) 프란치스코는 형 윤지충의 그늘에 가려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1801년 9월 17일에 처형된 그의 유골은 2021년 3월 전주 바우배기의 묘소에서 양 팔꿈치 아래와 두 무릎 아래가 절단되어 사라진 상태로 수습되었다. 2번 경.. 2021. 10. 23.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14) 혼돈과 얼룩의 시간 - 의화단 사건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14) 혼돈과 얼룩의 시간 - 의화단 사건 유럽 열강·교회에 대한 반발… 끝내 비극 부른 증오와 폭력 가톨릭신문 2021-10-17 [제3265호, 18면] 비밀종교의식 공유하던 의화단 민생파탄으로 조직 급속 확대 청일전쟁 후 위기 몰린 서태후 서양과의 투쟁에 의화단 이용 사제·신자 살해 등 참극 불러 “1900년 중국 북경. 이전부터 이어진 가뭄 피해로 인한 흉작으로 1억의 민중이 굶주렸으며, 민심은 흉흉하고 불안했다. 먼 12개국 1000여 명의 사람들이 외국인 거류 지역에 살고 있었다.” 의화단(義和團)을 소재로 한 영화 ‘북경의 55일’ 첫 장면에 나오는 내레이션이다. 영화는 주인공인 미국 해병대 루이스 소령이 그리스도교 선교사가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2021. 10. 17.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55) 프란체스코 하예즈의 '입맞춤'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55) 프란체스코 하예즈의 ‘입맞춤’ ‘작별 키스’에 담긴 숨은 뜻은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의지 가톨릭평화신문 2021.10.10 발행 [1632호] 이탈리아 민족의식 태동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체제는 장화 반도를 근본부터 흔들어 놓았다. 프랑스 혁명의 불길은 이탈리아에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전했고, 여러 군소국가로 분열되어 있던 장화 반도는 민족의식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나폴레옹 체제가 붕괴한 뒤 1814년 빈 회담을 계기로, 이탈리아의 통일을 향한 행보는 본격화됐다. 그러나 갈 길은 녹록지 않았다. 지난 호에 잠시 언급했지만, 이탈리아가 통일하려면 당시 북부 이탈리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를 몰아내야 하고, 교황청의 반대를 극복해야 했.. 2021. 10. 13.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70. "이 무덤 위에 교회가 서리라"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70. "이 무덤 위에 교회가 서리라" 순교자 유해 3위 교리당에 안치… 주문모 신부 예언 마침내 실현 가톨릭평화신문 2021.10.10 발행 [1632호] 무덤에서 출토된 사발 2021년 3월 11일 초남이성지 바우배기 성역화 작업 도중 윤지충, 권상연, 윤지헌의 무덤과 유해가 발견되었다. 반 년간의 검증 과정을 거쳐 지난 9월 24일 전주교구의 공식 학술 보고회가 있었다. 출토된 유골에는 목과 팔 등에 난 칼자욱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윤지충, 권상연의 무덤에서는 망자의 인적 사항을 적은 직경 15㎝ 크기의 사발이 묘광의 중간 부분에서 수습되었다. 윤지충의 묘에서 나온 사발에는 “성균생원(成均生員) 윤공지묘(尹公之墓). 속명지충(俗名持忠), .. 2021. 10. 12.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54)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54) 프란체스코 포데스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 선포’ 비오 9세 교황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교리’ 반포하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10.03 발행 [1631호]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시대 혁명 정부의 영향은 유럽 봉건주의 체제의 종말과 민족 자결주의가 싹트는 계기가 되었다.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의 통일된 민족 국가를 이룩하려는 열망은 특히 이탈리아를 자극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쉽지 않은 것이었다. 로마 제국 붕괴 이후 오랜 자치 국가주의를 넘어야 하고, 당시 북부 이탈리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를 몰아내야 하며, 교황청의 반대를 극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 2021. 10. 2.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13) 프랑스 선교 보호권 문제 [중국교회 역사이야기] (13) 프랑스 선교 보호권 문제 서양과 조약 맺고 천주교 금지 해제… ‘정치 개입’ 논란도 가톨릭신문 2021-10-03 [제3263호, 18면] 프랑스, 예수회 선교사 파견 중국 황실에서 영향력 발휘 1844년 10월 황포조약 체결 이후 천진·북경조약 맺으며 선교 보호권 법적 승인 받아 불법 조항 등 외교 문제 비화 “프랑스의 전통적 보호 정책이 극동에서 성립됐다.” 프랑스와 중국(청나라)이 1860년 북경(北京)에서 조약을 체결하자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 모니퇴르’(Le Moniteur)가 1861년 1월 11일자에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이 말은 중국에서 프랑스의 천주교 선교 보호권이 국제법적으로 보장받았음을 의미하며, 나아가 프랑스가 중국에서 천주교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 2021. 10. 1.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68. 불멸과 개벽을 꿈꾼 사람들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68. 불멸과 개벽을 꿈꾼 사람들 미륵 세상 꿈꾸던 이들, 천주교의 차별없는 세상에 빠져들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09.19 발행 [1630호] ▲ 초기 천주교 신자 중에는 천주교를 받아들이기 전에 도교 계통의 「정감록」 신앙에 빠졌던 경우가 의외로 적지 않다. 숙종조 이래로 조선을 강타했던 「정감록」 신앙은 거의 재림 예수 신앙의 조선 버전에 가깝다. 십승지를 찾고, 미륵 세상을 꿈꾸며, 도화낙원을 갈망하던 이들에게 천주교의 가르침은 그들이 원하던 바로 복음의 소리였다. 신선을 꿈꾸다 서학과 만나다 황사영은 백서에서 정약종에 대해서 이렇게 썼다. “정약종 아우구스티노는 일찍이 신선술을 배워 장생하려는 뜻이 있어, 그릇되이 천지가 개벽한다는 주장을 믿었다. 그러.. 2021. 9. 24.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김대건과 최양업 : 그 존재의 역사적 의미’ [신앙선조들의 발자취] ‘김대건과 최양업 : 그 존재의 역사적 의미’ 의정부교구 교회사 연구소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가 활동했던 19세기의 천주교 신앙공동체는 사회운동 단체가 아닌 종교적 공동체였다. 당시 천주교인들은 천국을 갈망하며, 그곳에 들기 위해서는 신분을 떠나 인간 평등의 가치 안에서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믿었다. 사랑이라는 새로운 가치의 실천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천주교인들의 천국이었던 것이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은 이성과 정의의 길을 따르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죽음 너머에 천국이라는 세상이 있고,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웃사랑을 비롯한 신자의 의무를 성실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웃사랑을 직접 실천함으로써 조선 후기 사회의 발전을 .. 2021. 9. 16.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53) 로마 공회장을 방문하는 그레고리오 16세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53) 필립 자크 반 브리의 ‘로마 공회장을 방문하는 그레고리오 16세’ 로마 황제 개선문 아래 극빈촌을 찾은 교황 가톨릭평화신문 2021.09.12 발행 [1629호] 나폴레옹과 정교 협약을 맺고, 그의 황제 대관식에도 참석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타협을 시도하며 교회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자 한 비오 7세 교황의 노력과 달리, 나폴레옹과 교회의 관계는 순탄치 않았다. 나폴레옹이 자신의 절대 권력을 위해 벌이는 전쟁과 대륙 봉쇄령에 반대하다가 포로생활까지 한 교황이지만, 비오 7세는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여러 면에서 인도주의적인 자세를 보여줬고, 로마로 귀환한 후 예수회를 부활시키는 등 나름대로 소신 있는 교황으로서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줬다. 보수주의 교황들, 레오 .. 2021.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