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세바스티아노(Saint Sebastianus, 1493) 페루지노(Pietro Perugino, 1450-1523) 지영현 신부 (가톨릭회관 평화화랑 담당)
서양미술에는 성인들의 순교를 주제로 한 작품이 여럿 전해지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성 세바스티아노의 순교입니다. 성 세바스티아노는 3세기 말경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대박해 때 순교하였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을 가까이서 돌보려고 고향에서 누렸던 화려한 경력을 모두 포기하고 로마 군대에 입대합니다. 그리고 황제의 신임을 받아 황제를 호위하는 친위대 지휘관이 되어 박해로 붙잡힌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비밀리에 돕습니다.
황제는 세바스티아노가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을 몰랐지만 한 배교자의 고발로 사실을 알게 됩니다. 황제가 “나는 그대에게 많은 총애를 베풀었다. 그런데 그대가 황제와 신들의 적이었단 말인가?”하고 묻자 세바스티아노는“저는 항상 당신의 구원과 이 왕국의 개종을 위해 예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항상 천상의 하느님을 흠숭해왔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격노한 황제는 그를 궁수들에게 넘겨 죽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화살을 맞고 쓰러진 세바스티아노를 우연히 발견한 카스툴로 순교자의 미망인 이레네가 그를 정성껏 간호하여 기적적으로 회생시킵니다. 회복한 세바스티아노가 황제 앞에 다시 나서서 “구세주께서 저를 치유해주셨고, 모든 백성들 앞에서 이 왕국의 가장 충실하고 선량한 시민들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짓밟는 황제의 부당한 박해에 대해 저항하도록 하셨습니다.”라고 말하며 맞섰습니다. 화가 난 황제는 그를 몽둥이로 맞아죽게 한 뒤, 로마의 하수구에 던져 버렸습니다.
오늘 그림으로 만나는 페루지노의 <성 세바스티아노>는 기둥에 몸이 묶여 화살을 맞은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궁수들이 활을 겨눈 격정적인 장면이나 고통으로 일그러진 세바스티아노의 표정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화살을 맞고 피를 흘리는 세바스티아노의 얼굴은 오히려 환희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부드럽게 처리된 윤곽선과 좌우대칭의 구성에서 풍기는 절제된 분위기를 통해 우리는 성 세바스티아노의 순교과 그 의미를 한결 성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고요한 시선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응시하는 그의 모습에서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며 아버지께로 향하는 예수님을 닮은 순교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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