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의 인구조사’, 1566년, 목판 위에 유채, 115.5 x 164.5cm, 벨기에 브뤼셀 왕립미술관.
‘두 마리의 원숭이’, 1562년, 유화, 20 x 23cm, 독일 베를린 시립미술관.
베들레헴의 인구조사’와 ‘두 마리의 원숭이’ 피터 브뤼겔
<작품 해설: 박혜원> 음악을 아는 사람은 바흐를 좋아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브뤼겔을 좋아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가 그려내는 화려한 화면 뒤에는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 브뤼겔 그림의 큰 매력이다.
16세기 북유럽 플랑드르 지방의 풍경과 농민들의 일상에 도덕적이자 풍자적 은유를 담아 화폭에 옮긴 화가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1527/28-1569년). 반 에이크 형제가 15세기를, 그리고 피터 폴 루벤스가 17세기의 바로크 시대를 열었다면, 그는 바로 16세기 플랑드르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이다.
그는 북유럽 특유의 세밀하고 섬세한 표현을 하면서도 매우 웅장하고 깊이 있는 구성과 밀도감 있는 인물 묘사로 당시의 인간세계를 매우 친근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풍자화가이다.
그의 그림 감상법은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데, 일반적으로 그림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나 부분을 크게, 그리고 비중 있게 표현하는 것이 전통적인 상식이라면, 그의 그림에서는 오히려 핵심적인 부분은 한 눈에 들어오지 않고, 마치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찾아내야 한다는 점이 특징이자 매력이다. 주로 농민의 소박한 모습을 즐겨 그려서 그가 소박한 지식과 취향의 인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사실 그는 당대 최고의 교양인이었다.
그는 당대 플랑드르의 풍경화가로 명성 있는 요아킴 파티니르(1480-1524년)에게서 화려한 색채와 자연풍경의 웅장하고 섬세한 표현을, 그리고 상상력이 돋보이는 지옥 장면을 그린 히에로니무스 보쉬(1450-1516년)에게서는 환상적이며 그로테스크한 표현을 배웠다.
하지만 브뤼겔과 보쉬의 접근 방식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보쉬는 죄, 죽음, 구원이라는 보편적인 그리스도교적 주제를 바탕으로 묘사하며 그의 문학적, 시각적 원천을 대부분 중세 신학에서 찾고 있는 반면, 브뤼겔은 자신이 속해있는 복잡한 코스모폴리탄적인 사회의 모습을 좀 더 직접적이고 생동감 있게 그려낸다.
그 역시 당대의 수많은 북유럽 예술가들같이 르네상스의 발생지인 이탈리아를 향해 여행을 떠났지만, 다른 화가들처럼 과학적이고 외향적이며 화려한 이탈리아풍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의식적으로 거부하여, 플랑드르의 민속 전통을 바탕으로 한 그만의 독특한 화풍을 창출해 냈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배운 것은 거대한 규모의 대우주적인 시각과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얻은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감, 그리고 생기 넘치는 표현을 들 수 있다.
16세기 플랑드르는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 펠리페 2세의 통치 아래에서 시달렸는데, 작품 ‘베들레헴의 인구조사’에서는 당시 외부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억압받는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염원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어느 겨울 해질 무렵, 눈 쌓인 플랑드르의 전원 풍경이 펼쳐진다. 그림 왼쪽에는 매우 낡은 오두막집이 보이고, 그 옆에는 키 크고 검은 나무 한 그루가 서있고, 왼쪽의 오두막집 앞에는 인파가 무리 지어 있고, 창가의 한 남자는 공책에 무언가를 적고 있다. 창문 위에는 둥근 리스가 매달려 있는데, 이곳이 여인숙 또는 선술집임을 알려주는 간판이다.
건물 벽 오른쪽에는 붉은색 쌍독수리 문장이 있는데 이는 당시 플랑드르 지방을 통치하던 펠리페 2세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것이다. 이는 펠리페 2세 치하에 억압받던 애환을 간접적으로 표출한 것으로, 바로 플랑드르인들에게서 세금징수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시 이들은 수입의 50%를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에 헌납하는 부당한 정책에 시달렸고, 이 황당한 요구는 숱한 반란의 동기를 유발하였다.
오두막집 옆의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새까만 나무 뒤에는 꽁꽁 얼어붙은 강이 보이고, 봇짐을 진 남자들과 아이들의 스케이트 타는 모습이 정겹다. 멀리 후경에는 붉게 물든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지고 있는데, 이 태양은 마치 전경의 큰 나무에 걸려있는 듯 보이고, 화면 전체에 불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전경 오른쪽에는 강가에서 팽이 치는 아이들, 얼음 위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는 어린 동생의 손을 잡아주는 소녀, 바구니를 썰매 삼아 타는 소녀, 그리고 눈 위에서 스케이트를 신고 있는 소년 등 잔잔하고 평화로운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이 평범하고 복잡한 16세기 플랑드르 전원의 일상 속에는 놀라운 장면이 숨어있다. 전경 중앙에는 푸른 망토 차림에 나귀를 탄 여인과 그 앞에 커다란 밀짚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있는데, 이들은 바로 성모 마리아와 요셉이다.
이는 아마도 예수님 탄생 전날의 풍경일 것이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온 세상 사람들에게 호적 등록을 하도록 하자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자기 고향을 찾아 길을 떠났는데, 요셉과 성모 마리아 역시 그들이 머물던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예수님의 출산을 앞둔 마리아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긴 여행을 감행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다.
이 그림의 절묘함은 바로 16세기 당시 플랑드르를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왕 펠리페 2세가 세금징수를 요구하자, 서민들이 여인숙 같은 집에 모여드는 풍경과 1,600여 년 전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호적 등록을 하는 성경 속의 장면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마술처럼 오버랩되어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바로 인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는 구세주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라는 위대한 역사의 현장이 군중 속에 묻혀 아무도 성모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우리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에 대한 냉철한 고발이자, 이러한 허무한 현실에 대한 한탄이다.
‘두 마리의 원숭이’에서는 감옥의 작은 창가에 있는 쇠사슬에 발이 묶여있는 두 마리의 원숭이 모습을 담고 있고, 창 너머에는 바로 16세기 화려했던 항구도시 안트웨르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이는 플랑드르 속담, “헤이즐넛 때문에 법정에 선다.”는 의미에 대한 우의화로 헤이즐넛을 훔치는 하찮은 이유로 더 큰 자유를 잃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고 있다. 멀리 펼쳐지는 꿈의 도시 안트웨르펜을 뒤로 하고, 쇠사슬에 묶여있는 어리석은 원숭이의 모습이 우리 자신의 모습은 아닌지….
이 순간의 부질없는 것들에 대한 집착과 유혹을 뿌리치고 인내하면, 밝은 빛의 세계가 있음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 가치 있는 꿈을 향하여 올바로 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져본다.
박혜원 소피아 - 화가. 벨기에 브뤼셀 리브르 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하고, 브뤼셀 왕립 미술학교 판화과를 졸업한 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판화과를 졸업했다. 인천 가톨릭 대학교, 한양여대, 상명대학교 등에 출강하였고 2003년 평화방송 ‘함께 보는 교회미술’을 진행했으며, 최근 “매혹과 영성의 미술관”(생각의 나무)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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