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대성전의 피에타 미켈란젤로 1498-1499년, 대리석, 높이 174cm,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이탈리아.
박혜원
15세기 중반,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시작된 ‘문예부흥’, 곧 르네상스 시대는 중세의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 곧 ‘휴머니즘’의 시작과 이성적인 과학적 사고와 고대 그리스, 로마의 고전주의적 사고, 곧 ‘고대로의 회귀’를 추구한 시대이다. 특히 르네상스의 전성기는 16세기 초에서 중반에 그 절정에 이르게 되는데, 3대 거장으로는 고전주의의 전형을 제시한 라파엘로(1483-1520년)와 백과사전적 지식과 과학, 예술 장르를 넘나든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년), 그리고 여기 소개할 미켈란젤로(1475-1564년)를 손꼽는다.
미켈란젤로는 조각, 회화, 건축, 기계공학, 문학 등의 분야를 넘나든 천재 예술가로, 르네상스 후기에 발달한 ‘매너리즘’(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이행하는 사이인 16세기 중반에서 17세기 초에 나타난 과도기적 미술양식으로 ‘S’자형의 과장되게 늘어진 곡선 형태를 띠는 것이 특징) 형성과 19세기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뎅(1840-1917년) 등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그의 독창적이며 강렬한 표현은 19세기, 격렬한 감정 표현을 추구한 프랑스의 낭만주의자들이 재조명하기 전까지는 ‘취향을 타락시키고 조화롭고 세련된 고전주의적 감수성을 형성하는 데 방해가 되는 위험하고도 불결한 인물’로 간주되며 비난받았다.
들라크루와(Eugène Delacroix, 1798-1893년),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 1791-1824년) 등의 낭만주의 화가들은 예술가의 ‘고질적인 우울함’인 멜랑콜리의 전형을 미켈란젤로에게서 찾았다. 그는 회화, 조각, 건축 분야에서 수많은 걸작들을 남겼음에도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완벽을 향해 투혼하였다. 또한 괴팍한 성격과 예술가로서 완벽주의자였던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하느님께 매달렸다. “회화도 조각도 영혼을 달랠 수는 없다. 영혼은 우리를 안으려고 십자가 위에서 팔을 벌린 신의 사랑을 향해 있다.”는 그의 고백은 그의 예술 투혼이 바로 그리스도를 향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1475년 이탈리아 아레초에서 태어난 그는 피렌체의 오래된 카노사 백작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행정관이었다. 일찍이 피렌체의 유명 화가,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jo, 1449-1494년)에게서 미술교육을 받은 그는 역대 이탈리아의 뛰어난 예술가들인 지오토(Giotto di Bondone, 1266-1337년), 만테냐(Andrea Mantegna, 1431-1606년), 마사치오(Tommaso di Ser Masaccio, 1401-1428년), 도나텔로(Donato di Niccolo Donatello, 1386-1466년)에게서 견고하고 고전적인 조형성을 물려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그만의 강렬하고 독창적인 조형세계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현재 성 베드로 대성전에 보관되어 있는 미술사 속의 걸작으로 프랑스 생드니 교회의 대주교 라그롤라(Jean Bilhères de Lagraulas, 1430-1499년)의 주문으로 제작된 이 조각은 이탈리아 카라라 지방의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고전주의적인 형태적 균형, 조화와 절제미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이 걸작은 미켈란젤로가 불과 24세밖에 되지 않았을 때 만든 것으로 그가 이미 기술적인 표현에서 최정상에 도달하였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또한 그는 마리아의 가슴을 가로지르며 두른 띠에 “이 작품은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다.”고 새겨 넣을 만큼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면모는 대부분 익명으로 작품을 남긴 중세의 예술가들과 대조를 이룬다.
이탈리아어로 ‘연민’, ‘경건한 마음’의 의미를 가진 ‘피에타(pieta)’는 서양미술사 속에서 즐겨 다루어지는 주제로, 십자가에서 내려진 아들 예수를 품에 안고 고통스러워하는 성모님의 모습을 그린 것을 일컫는다. 완벽한 인체해부학적 표현, 조형성과 드라마틱한 감정 표현을 과시하는 이 작품이 견고한 대리석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표현이 유연하고 섬세하며 사실적이다.
화려하고 정교한 옷 주름의 드레스를 넓게 펼치고 앉아있는 마리아의 모습은 매우 안정된 피라미드 구도로 웅장하고 영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고, 그녀의 무릎 위에는 생명의 기운을 잃은 아들 예수가 힘없이 축 늘어져 있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잠진 성모님은 아들을 내려다보며 고통스러워한다.
르네상스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예술가 열전”의 저자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년)가 이 작품에 대해, “돌덩어리가 이같이 완벽한 형태로 변신하는 것은 자연으로부터 살덩어리가 빚어지는 생명의 기적과 같다.”고 한 것은 진정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이 작품이 공개되었을 당시 성모님을 너무 젊고 아름답게 표현한 것을 보고 이들이 모자지간이 아니라 연인 사이 같아 보인다는 비판의 목소리에 대응해 신심 깊은 미켈란젤로는 아래와 같이 항변하였다. “인간은 죄악이 있어 늙게 되지만, 원죄 없으신 성모님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이는 바로 성모님의 무염시태와 순결함을 증명해 주는 성스러움의 증거이다.”
우울한 듯 깊은 슬픔에 잠긴 마리아에게서는 그 고통이 절제되어 표현되어 있다. 그녀의 곧고 날렵한 코의 선을 따라 내려가면 살며시 다문 곱고 부드러운 입술에 이르게 되고 그녀의 침묵에는 형언할 수 없는 깊은 고통을 삼키는 아픔이 서려있다. 이는 너무 고통스러워 안으로 삼킬 수밖에 없는 고통의 표현이다. 그녀의 머리에 드리워진 두건은 마치 화려한 레이스인 듯 우아하게 주름지며 가볍게 얹혀있고, 목 부분의 오글거리는 잔 옷주름은 고귀한 자태의 성모님을 더욱 아름답게 돋보이게 해준다.
흠잡을 데 없는 절묘한 마무리가 인상적인 이 피에타의 아름다움은 고전주의 작품의 진수를 보여줌과 동시에 신성함 속에서 인간적인 것을, 그리고 인간적인 것 속에서 신성함을 느끼게 해준다. 강렬하고 드라마틱한 휴머니즘이 느껴지는 예수님의 몸은 생명의 기운을 잃은 상태이고 부드러운 머릿결이 곱슬거리는 그의 평온한 얼굴은 마치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깊은 잠이 든 듯 보인다.
팔의 섬세한 근육과 힘줄, 그의 초췌하게 마른 몸에서 비추이는 갈비뼈는 흰 대리석 속에서 은은한 투명함으로 드러나고, 아들의 몸을 힘주어 잡고 있는 성모님의 손가락, 예수님의 몸을 두른 수의의 아름다운 주름 표현은 작품에 조형적 긴장감과 리듬감을 조성하면서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예수님의 손의 힘줄 표현은 남성적인 인체미가 부각되는 반면, 그의 손등에 난 못자국은 십자가에 못 박힌 가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느 각도에서 감상하여도 허술한 부분을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인체와 옷주름의 표현과 이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 허공을 향해 손을 들어 무언의 절규를 하는 성모님의 손, 이 모두는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며 피에타의 비극을 보여주고 있다.
기술적인 완벽을 넘어 영적인 깊이가 영혼을 울리는 ‘피에타’. 시공간을 초월하여 십자가 비극의 현장에 초대된 우리는 성모님의 고통을 함께 체험하게 된다.
박혜원 소피아 - 화가. 벨기에 브뤼셀 리브르 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하고, 브뤼셀 왕립 미술학교 판화과를 졸업한 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판화과를 졸업했다. 인천 가톨릭 대학교, 한양여대, 상명대학교 등에 출강하였고 2003년 평화방송 ‘함께 보는 교회미술’을 진행했으며, 최근 “매혹과 영성의 미술관”(생각의 나무)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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