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사차르의 향연 / 렘브란트 (1635년경, 캔버스 유채, 167x209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년)는 서양회화사에 빛나는 예술가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았으나 마지막 순간까지 풍부한 예술적 창조력을 잃지 않았던 네덜란드 태생의 바로크 화가이다. 우리가 그를 ‘빛의 화가’라고 부르듯 렘브란트는 명암의 효과를 이용하면서, 눈으로 본 것을 정확하게 재현하기보다는 인간 내면의 따뜻한 심성과 숭고한 존엄성 그리고 높은 종교적 정감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벨사차르의 향연(The Feast of Belshazzar)’이다. 이 그림은 구약의 다니엘서 제5장 1-7절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고대 바빌로니아의 멸망과 연관된 하느님의 전능을 표현한 것이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인 벨사차르의 아버지가 느부갓네살인데, 그는 예루살렘에 쳐들어가 유대 청년 귀족 다니엘을 사로잡고 성전에 모셔진 성배들을 약탈한다. 이곳에서 다니엘은 조언과 꿈의 해몽 등 하느님의 섭리를 통해 왕을 돕고, 왕은 유대인의 종교를 인정하는 등 서로 존재하는 무리 없는 삶을 영위한다.
느부갓네살이 세상을 뜨자 벨사차르가 왕위에 오르는데, 그는 선왕과는 달리 향락적인 생활만을 즐기고, 금은동철이나 나무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며 하느님을 모독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만조백관들, 왕비, 후궁들과 함께 잔치를 베푸는 자리에서 술에 거나하게 취하자 예루살렘 하느님의 집에서 약탈해 온 금잔, 은잔을 내어오라고 하였다. 잔이 나오자 아첨꾼들과 함께 포도주를 따라 연방 퍼마시고는 흰 이를 드러낸 채 자신의 허망한 자만심을 드러낸다. 이런 하느님에 대한 모독을 스스럼없이 자행하는 순간, 벨사살의 뒤편에 갑자기 빛과 함께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글씨를 새기게 된다.
이런 예기치 못한 광경을 먼저 목격한 사람은 벨사차르 앞에서 아첨하던 취객들이었다.
갑자기 취기가 가시고, 얼굴 구석구석에서 구린내를 피우던 향락의 웃음은 일순간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벨사차르는 몸을 돌려 이 광경을 확인한다. 순간 그의 눈앞에 펼쳐진 믿지 못할 광경으로, 그는 머리가 아뜩해지며 허벅지가 녹는 듯하고 무릎이 떨렸다. 그의 놀란 눈동자에는 글씨에서 발산되는 빛이 비추며, 얼굴은 서늘한 두려움의 감정으로 굳어진다.
우리는 그림에서 벨사차르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의 속도로 휙 돌아가버린 왕관과 터빈을 본다. 그 비뚤어진 모습은 보잘것없고 우스운 지상의 권위와 명예이며, 어깨에 걸친 화려한 황금 갑옷과 목걸이 역시 고된 속세의 질곡을 드러낼 뿐이다.
그 갑옷 아래 몸이 돌아가면서 비계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불룩한 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단추가 떨어져나가 옷이 해하니 벌어져 있다. 세속의 영광과 명예라는 허울 뒤에 숨은 추한 인간의 모습이다.
새파랗게 질린 벨사차르는 마술사, 점성가, 점쟁이들을 불러 국가에서 셋째 가는 벼슬과 자줏빛 도포와 황금 목걸이를 상으로 걸고는 그 글귀를 해석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의미를 알아내는 사람이 없었다.
안절부절못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벨사차르에게 그의 어머니가 나타나 놀라운 신통력과 지혜로 꿈이나 수수께끼 등 어떤 어려운 문제도 잘 풀어내는 재주가 하느님 같아 선왕의 총애를 받았던 다니엘이라는 자가 있으니, 그가 이 글귀의 뜻을 풀어낼 것이라고 말한다. 벨사차르는 다니엘을 부르고, 한밤에 불려온 다니엘이 이 글을 해독하게 된다.
다니엘의 해석에 따르면, 이 글은 ‘므네 므네 트켈 파르신’이다. ‘므네’는 ‘하느님께서 왕의 나라 햇수를 세어보시고 마감하셨다.’는 뜻이며, ‘트켈’은 ‘왕을 저울에 달아보시니 무게가 모자랐다.’이다. ‘브라신’은 ‘왕의 나라를 메대와 페르샤에 갈라주신다.’는 의미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바빌로니아는 하느님의 뜻에 의해 멸망할 것이며, 벨사차르는 이제 더 이상 왕이 아니라는 것이니 말이다.
이 말을 들은 벨사차르는 기죽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다니엘에게 약속한 벼슬과 도포와 목걸이를 주고는 어깨가 쳐져 총총히 자신의 침실로 사라졌다가, 다음날 아침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이는 향락을 일삼고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악한 인간의 종말과 그가 지배하던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준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손이 그림에 빛을 부여하는 광원으로 작용한다. 밝은 부분은 정의와 선이, 어두운 부분은 타락과 악이 존재한다. 그리고 빛의 방향에 따라 가무의 향락과 술에 취한 사람들이 느닷없는 상황에 대해 겪는 내면적 심리상태가 나타나있다. 얼마나 놀랐는지 돌아가는 몸을 주체하지 못한 손이 황금잔을 쳐 넘어뜨리면서 포도주가 바닥에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왼쪽의 고관과 왕비, 후궁을 통해 향락의 광기에 섞인 두려움의 감정이 유감없이 표현되어 있으며, 그 놀람으로 오른쪽 후궁은 술병을 안고 뒤로 넘어가고 있다.
이 그림은 바로 전능하신 하느님의 심판 앞에서 자만과 허영심에 들뜬 치졸한 인간이 겪는 무기력한 공포심을 드러낸 작품으로, 어떤 사실을 통해 인간이 겪는 내면적 깊이와 본질을 표현하고자 한 렘브란트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그림이다.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예술사 석사와 D.E.A. 과정을 마쳤으며, 파리 3대학교(Sorbonne Nouvelle)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샤갈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아폴리네르의 조각비평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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