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세바스티아노의 순교 / 폴라이우올로 형제 (1475년, 패녈 위에 유채, 292x203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안토니오 폴라이우올로(1432-1498년)는 피렌체 출신으로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를 이끈 중요한 예술가이다. 그는 특히 고대 헬레니즘 예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그 관심은 그를 자연히 인체 해부학에 흥미를 갖도록 이끌었다. 그의 깊은 해부학적 지식은 인물의 격렬한 움직임과 박진감 있는 묘사뿐 아니라 우아한 자태와 세련된 선의 묘법을 가능하게 하였다. 더욱이 그는 자연 풍경을 실감 그대로 신선하게 표현하는 데에도 능하였다. 이런 사실주의적인 기법을 바탕으로 그는 초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의 조형성이 단적으로 드러난 그림이 그의 동생 피에로와 함께 그린 ‘성 세바스티아노의 순교(The Martyrdom of St. Sebastian)’이다.
한 잘생긴 젊은이가 땅에 박힌 마른 막대기에 묶여있고, 그의 몸에는 많은 화살이 박혀있다. 그리고 그의 발아래에는 여러 병사가 그를 향해 힘껏 활시위를 당기거나 허리를 굽혀 새 화살을 장착하고 있다. 잔인한 학살극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다. 지금 처형당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성 세바스티아노이다. 성 세바스티아노는 서기 3세기경 로마의 그리스도교 순교자인데, 13세기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의 그리스도교 전설집인 “황금전설(Golden Legend)”에 따르면 그는 로마의 디오클레티안과 막시미안 황제의 총애를 받던 근위 장교로 황제 수비대를 이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교인이었다. 그는 박해받고 형장으로 끌려가는 형제 신자들을 격려하고 도와주었으며, 200개 이상의 이교도 신상을 파괴하기도 하였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디오클레티안 황제는 세바스티아노를 광야로 끌고 가 말뚝에 매달아 화살을 쏘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 이 때문에 세바스티아노는 흔히 고슴도치처럼 화살이 박힌 모습으로 묘사되는 것이다.
세바스티아노는 이런 극형을 받고도 며칠 뒤 완전하고 원기왕성한 모습으로 황제의 궁전에 나타난다. 그가 첫 번째 순교에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는 황제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개종할 것을 요구하다가, 결국 죽을 때까지 곤봉으로 맞는 형벌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의 시신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자로 추앙하지 못하도록 하수구에 버려졌으나, 곧 수습된 유해는 아피아 가도의 지하묘지에 안장되었다. 680년 샤를마뉴 때의 기록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직접 내리신 명령으로 그의 묘지 위에 새로운 교회가 세워졌는데, 이 교회가 바로 로마의 ‘산 피에트로 인 비콜리’이다.
지금 이 그림을 보면 죽음을 감내하는 수동적 자세의 세바스티아노와 그에게 형벌을 가하는 역동적 태도의 궁수들이 보인다. 수동적 자세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감내하는 모습으로 영원한 구원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죽음의 형벌 앞에서 세바스티아노는 하늘에 시선을 돌리고 있으며,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하늘은 푸른빛을 열고 성령의 표시로 금빛 구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의 머리가 캔버스의 끝에 닿은 것으로 보아, 세바스티아노의 순교자 전교라는 하느님의 섭리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세바스티아노의 부드럽고 수동적인 모습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원한 안식처를 준비하러 하늘로 향하는 순교자의 길을 보이는 것이며, 그 아래의 궁수들의 힘찬 태도는 하느님의 섭리에 불응하면서 온갖 죄악과 악행, 부정을 저지르는 지상의 세계를 드러낸 것이다. 이 두 세계가 세바스티아노를 정점으로 피라미드 형상으로 펼쳐져 있다.
이 그림에는 폴라이우올로의 고대 예술에 대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몇몇 요소가 있다. 우선 그림 좌측의 폐허가 된 고대 유적, 곧 파괴된 박공벽이다. 그 벽에는 네 개의 부조가 새겨져있는데, 두 개는 로마인 흉상이며, 하나는 전쟁의 이미지이고 다른 하나는 죄인이 재판을 받는 법정의 모습이다. 이들은 왕권과 아울러 전쟁과 재판이라는 고대의 합리적 이성 중심 사상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사형대 위의 세바스티아노의 모습에서 그의 고대 취미를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신체의 S자 윤곽선(콘트라포스토)과 아울러 말끔한 육체미이다. 고대의 헬레니즘은 아름답고 완전한 신체를 통해 온건하고 도덕적인 정신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지금 세바스티아노의 건장한 모습은 바로 인간이 지녀야 할 엄한 도덕률이며, 더없이 아름답고 완전한 하느님의 세계를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폴라이우올로의 생각은 헬레니즘과 르네상스의 인문주의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세바스티아노는 페스트, 곧 역병의 수호성인이다. 15세기를 연이어 덮친 페스트의 공포에서 해방되고자 사람들은 세바스티아노에게 기도하고 보호를 바랐던 것이다. 페스트에 감염되면 며칠 안으로 죽게 되는데, 겨드랑이와 허리를 중심으로 몸에 난 상처가 마치 화살에 맞은 자국처럼 보인다. 바로 세바스티아노가 화살을 맞고도 살아남았다는 이유 때문에 그가 페스트의 죽음을 막아주는 수호성인이 된 것이다. 지금 이 그림에서도 허리와 겨드랑이에 화살을 맞은 세바스티아노의 모습이 보인다. 이런 이유에서 사형대 위의 세바스티아노는 고슴도치처럼 화살이 박힌 모습이 아닌 몸의 몇 군데에 화살이 박힌 모습으로 다시금 묘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이 그림은 폴라이우올로의 조형세계와 아울러 순교를 통한 하느님의 전교, 그리고 고통스런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하느님의 섭리가 간접화되고 주인공의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 부각된 것은 이 작품의 인간중심적 조형성을 드러내며, 그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산실이 피렌체인 만큼 굽이쳐 흐르는 강 너머 저 하늘에 닿아있는 곳은 바로 인문주의라는 꿈의 이상을 실현할 피렌체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그림을 주문한 사람이 메디치 가와 더불어 피렌체를 이끈 정신적 지도자인 안토니오 푸치라는 사실이 이런 점을 입증하고 있다. 이 그림은 안토니오 푸치가 산티시마 아눈지아타 성당의 가족 경당을 위해 주문했던 걸작이다.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샤갈에 관한 논문으로 예술사 석사, 파리 3대학교(Sorbonne)에서 아폴리네르의 조각비평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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