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심판 / 미켈란젤로 (1534-1541, 프레스코화, 약 14.5x13m, 로마 바티칸 궁전의 시스티나 경당)
권용준 안토니오(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거인 같은 모습의 억센 팔을 치켜들고 수많은 사람들에 휩싸여 세상을 향해 위엄의 목소리를 던지는 젊은이가 우리의 마음에 두려움의 자국을 내는 작품이 있다. 바로 시스티나 경당의 제단 뒤를 장식하고 있는, 복잡하고 현란한 구성의 ‘최후의 심판’이다. 이 작품은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주문한 것으로, 르네상스 전성기의 위대한 예술가인 미켈란젤로가 61세라는 예술적 성숙기에 7년여에 걸쳐 완성한 것이다.
작품을 그리던 당시 세상은 무척 암울했다. 1527년 독일 황제 카를 5세에게 로마가 함락되고, 유럽은 신교와 구교로 분열되어 전쟁에 휩싸이면서 교황의 권위는 바닥에 떨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교황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진노를 상기시키고 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이 작품을 주문하였으며, 당시 종교적 경건주의에 젖어있던 미켈란젤로는 신앙을 저버린 인간들의 광기에 하느님의 심판이 머지않았다는 경고를 하고자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어 ‘최후의 심판’을 테마로 삼아 그림을 그렸다.
클레멘스 7세의 뒤를 이은 교황 바오로 3세가 “나는 당신의 그림을 갖고자 교황이 되기를 30년 동안이나 기다렸소.”라고 고백할 만큼 위대한 화가 미켈란젤로. 교황이 그림의 나신을 수정해 달라고 요구하자 “교황 성하께서 먼저 세상을 바로 잡으면 이까짓 그림 따위야 저절로 바로잡힐 것입니다.”라고 일성을 가한 자의식 강한 예술가의 손에서 탄생한 그림, 그럼에도 24년 뒤 그간 논란이 되었던 나체의 부끄러운 부분을 가려야 하는 운명에 처했던 불운한 작품이기도 하다. 미켈란젤로가 죽기 한 달 전, 그림을 수정하기로 결정이 난 것이다. 이 일을 담당한 사람은 제자 볼테라였다. 그는 엉덩이를 흔들어댄다고 비난을 모았던 가타리나 성녀는 본격적으로 손을 보아야 했으나, 성인들의 부끄러운 곳은 물감으로 칠해 가리는 방식을 택하였다. 이 일이 있은 뒤 볼테라는 ‘브라게토니’ 곧 ‘가리개 귀신’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림은 심판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391명의 인물과 함께 천상과 지옥의 세계가 공존하는 거대한 공간을 연출한다. 그림 속 인물들은 여러 성자와 구원받은 영혼, 벌 받은 영혼들이며, 왼쪽은 천국에 오르는 영혼, 오른쪽은 지옥에 떨어지는 영혼들로, 그 회전식 동적 구조가 격정적인 심판의 순간에 한층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작품은 구조상 네 개의 띠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꼭대기의 첫 번째 띠에는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수난에 사용된 도구들을 들고 있다. 왼쪽의 반달모양의 루네트에는 가브리엘 대천사를 중심으로 천사들이 십자가를 지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가시관을 들고 간다. 오른쪽 루네트에는 책형기둥을 세우는 천사들이 보이고, 한 천사는 채찍을 들고 온다. 천사들이 예수님의 수난에 사용되었던 도구들이 바로 구원의 도구였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림의 중심인 두 번째 띠에는 심판자 그리스도와 성인들이 있다. 그리스도의 위를 향한 오른손과 밑을 향해 뻗은 왼손은 천국과 지옥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면서 복잡하고 유동적인 그림의 구조에 통일감을 부여한다. 그리고 예수님 주위에는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성자들이 모여있다.
예수님의 바로 아래, 왼쪽이 석쇠를 든 라우렌시오이고 오른쪽이 제 살가죽을 들고 있는 바르톨로메오이다. 모두 순교 때 당한 수난의 상징물들로, 라우렌시오 성인은 석쇠 위에서 화형을 당했으며, 성 바르톨로메오는 아르메니아에서 전교 중 산 채로 살가죽을 벗기우는 형벌을 받았다. 마리아의 왼쪽에 십자가를 든 성 안드레아의 뒷모습이 보이고, 그 곁엔 세례자 요한이 있다. 예수님의 오른쪽에서 열쇠를 들고 있는 백발노인은 성 베드로이며, 그 왼쪽에 성 바오로의 모습이 보인다. 세례자 요한과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의 양편에서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데, 요한은 낙원에서 추방되어 황무지를 일구어야 했던 아담으로, 현재와 과거를 의미하는 두 개의 열쇠를 쥔 베드로는 교황 바오로 3세로 기억되고 있다. 베드로 사도 위에서 예수님과 흡사한 동작으로 우리를 노려보는 성인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던 요한 사도이다.
성인들의 왼쪽 군상은 여자 선지자들과 구약의 여인들인데, 특히 무릎을 굽힌 어린 소녀를 보호하는 거대한 여인은 하와 또는 가톨릭교회로 불린다. 또 오른쪽에는 구약의 예언자, 성조, 성인들이 운집해 있다. 그 중심에 예수님을 대신해 십자가를 진 키레네 사람 시몬이 거대한 십자가를 지고 있다. 선한 도둑 디스마 역시 작은 십자가를 짊어진 모습으로 보인다. 그 사이로 강철 소모기를 든 블라시오 성인과 부서진 칼날바퀴를 든 알렉산드리아의 가타리나 성녀, 화살을 손에 든 세바스티아노 성인이 보인다. 역시 이들이 순교할 때 사용된 형장의 도구들이다. 블라시오는 강철 소모기로 찢겨서 순교했고, 알렉산드리아의 가타리나는 칼날을 박은 바퀴로 찢어 죽이려고 했으나 갑자기 벼락이 쳐 고문도구가 박살나자 결국 참수를 당해 순교했으며, 세바스티아노는 화살로 처형될 뻔했으나 극적으로 살아났다가 다시 발각되어 영웅적으로 순교하지 않았는가?
세 번째 띠의 중앙에는 최후의 심판을 알리는 천사들이 일곱 나팔을 불고 있고, 대천사 미카엘은 구원의 명부를 펼쳐들고 있으며, 다른 천사는 지옥의 명부를 펼치고 있다. 그런데 구원의 명부는 작고 지옥의 명부는 크게 그려져 있음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
이 부분의 왼쪽에는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가는 복된 사람들이 있고, 오른쪽에는 지옥의 불로 떨어지는 천벌 받는 자들이 묘사되어 있다. 묵시록에 따르면, 심판의 날, 천사들의 나팔에 무덤이 열리고, 사람들은 덕행과 악행의 무게에 따라 구원받는 영혼과 저주받는 영혼으로 나뉘어서 천국으로 올라가거나 지옥불의 아가리 속으로 떨어진다. 천사들이 오르기 힘들어하는 선한 영혼들을 위에서 끌어주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왼쪽은 천국으로 올라가려고 애쓰는 영혼들에게 난폭한 주먹질을 해대는 천사들이 있고, 악마들 또한 비명의 영혼들을 끌어 내리고 있다. 악마와 뱀에게 사로잡혀 공포와 절망의 천형을 받는 영혼들의 몸서리치는 고통이 곳곳에 보인다.
네 번째 띠 왼쪽에는 무덤에 갇혔던 영혼들이 소생하고 있고, 오른쪽에는 영벌의 운명에 처한 영혼들이 카론의 배에 실려 지옥으로 향하고 있으며, 이들을 심판하는 미노스가 지옥의 문을 지키고 있다. 클레멘스 7세 교황은 수도복을 입고 무덤에서 나오는 영혼을 돌보고 있으나, 큰 뱀이 성기를 물고 있는 미노스의 초상은 이 그림의 나체형상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던 교황청 의전 담당관인 체세나 추기경으로, 작가가 가한 무언의 예술적 복수를 확인할 수 있다. 추기경은 “이처럼 거룩한 장소에 부끄러운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낸 수많은 나체를 그린 것은 매우 그릇된 일이며, 이 작품은 교황의 소성당이 아니라 목욕탕이나 매춘굴에나 어울린다.”며 비난의 화살을 쏘았던 것이다.
당시 전운이 감도는 암울한 정국과 분열의 위기에 처한 교회의 암담한 상황 속에서 경건한 믿음을 잃지 않으려 했던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모습을 바르톨로메오의 벗겨진 살가죽에 마른 걸레처럼 일그러진 모습으로 새긴 이유는 무엇일까? 한 해를 시작하는 이즈음, 이런 고통으로 일그러진 초상들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깊은 신앙의 자세를 되돌아보는 것도 가치로운 일일 것이다.
권용준 안토니오 - 프랑스 파리 10대학교(Nanterre)에서 현대조각에 관한 논문으로 예술학석사를, 파리 3대학교(la Sorbonne Nouvelle)에서 아폴리네르의 예술비평에 관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이며, 미술비평가로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 “명화로 읽는 서양미술사”(북하우스)와 “테마로 보는 서양미술”(살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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