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강림 - 크레타 화파
목판에 에그 템페라, 1662년, 35x28.5cm, 산 조르조 데이 크레치 교회, 베네치아
[말씀이 있는 그림] 우리와 함께 머무르시다
열두 명의 사도가 모두 한 방에 모여 있는 가운데 하늘에서는 성령의 빛이 내려오고 있다. 그림 가장 위에는 성령의 상징인 금빛 줄기가 사도들을 향하고 있다. 하느님의 형상처럼 현실 속에는 구체적인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 성령을 빛의 현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아래에는 사도들이 중간을 비워둔 채 반원의 날개 형태로 서로 마주 앉아 있다. 둥근 자리의 윗부분 왼편에 베드로가, 오른편에 책을 든 바오로가 앉아 있다. 이들 각자의 손에는 책과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네 복음사가(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는 자신들의 복음서를 손에 들고 있고, 나머지 사도들은 가르침의 은사를 받고 있다는 표징으로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이런 사도들의 모습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고 그 의미와 효력을 설교하고 가르치는 데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상 공관복음 사가들과 사도 바오로는 성령강림 사건에 없었을 수도 있지만, 교회 안에서 성령의 현존은 지속적이며 끝이 없어서 그들은 여기에 현존하는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와 바오로 사이에는 공간이 비어있다. 이 비워진 공간은 준비된 자리로 성령이 머무시는 내적 공간이며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자리로 해석된다. 예수님은 12지파를 상징하는 12명 사도를 선택하시고, 베드로와 바오로는 사도의 수장역할을 한다. 베드로는 반석 위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울 것을 약속받게 되었고,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힘으로 펼치어 주신 은총의 선물을 따라,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에페 3,7 참조) 이미 교회는 사도 바오로를 베드로와 함께 첫 번째 자리에 놓고 있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도들은 성령을 알고 받아들임으로써 승천하신 주님의 현존 안에 머물게 되었으며, 그분의 증인으로서 사명을 실천할 충만한 힘과 능력을 부여받는다. 또한 예수님은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요한 14,18)는 말씀으로 사도들(자녀)에 대한 그리스도(아버지)의 사랑을 알 수 있다.
그림 아래 반원형 안에는 늙은 사람이 임금의 복장을 하고 어둠 속에 서 있다. 그는 12개의 두루마리가 놓여 있는 흰 천을 들고 있다. 여기서 어둠은 믿음이 없는 전세계를 말하고, 모든 민족을 대표하는 늙은 사람이 쓰고 있는 왕관은 세계를 지배하는 자를, 붉은색 옷은 악마의 제물적 피를 의미한다. 따라서 모든 민족이 아직 어둠 속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 어둠을 밝혀줄 가르침과 말씀을 전할 사람이 열두 사도임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늙은 왕이 들고 있는 12개의 두루마리는 가르침으로 온 세상에 빛을 가져오는 12사도를 뜻한다. 이 12개의 두루마리 형태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러 나라말, 12개의 민족, 12개의 뿌리, 이스라엘의 지파, 성령을 받은 후 열두 사도가 즉시 말을 시작하는 12개의 언어를 말하기도 한다.
믿음은 세상(어둠)과 사도들(빛)을 나누고 있다. 사도들은 계명을 지키며 믿음에 충실한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과 일치, 친교를 이루며, 하느님의 구원을 확신하고 증언하고 실천하게 될 것이다. 믿음의 사도들(자녀들)로 어둠에서 빛으로 나가는 것이다.
[2014년 5월 25일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