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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성령 강림 - 두치오 디 부오닌세냐

by 파스칼바이런 2014. 6. 19.

 

성령 강림 - 두치오 디 부오닌세냐

1308-11년, 목판에 템페라, 37.5 x 42.5cm,

시에나 대성당 박물관, 이탈리아

 

 

[말씀이 있는 그림] 하느님의 숨결 ‘바람’과 생명의 힘 ‘불꽃’

 

중세 이탈리아 화단의 거장인 두치오(Duccio di Buoninsegna, 1255-1319)는 시에나 대성당을 장식하기 위해 대형 제단화인 <마에스타>를 그린다. 이 작품은 그 가운데 한 패널인 <성령 강림> 장면이다. 좁은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성모 마리아 곁에 모여 앉아 있다. 그들 각 사람의 머리 위로 성령의 불꽃이 내려앉는다. 이후 제자들은 모든 백성에게 복음 선포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바로 이 순간을 교회의 탄생으로 본다.

 

제자들 한가운데 마리아는 금장식 주름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짙은 푸른색 망토를 입고 있다. 이 황금빛 사선의 표현은 비잔틴 미술에서 흔히 사용되는 방법으로 마리아가 천상의 영광 속에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마리아는 제자들 가운데 있다. 그녀가 교회의 중심에 있다는 것과 제각기 다른 성격의 제자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결속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결속은 각각의 머리 부분에 둘러싸인 금빛 후광이 연결되어 모두 하나를 이룬 것으로도 확인된다. 성령의 은총으로 교회는 친교와 일치를 이루게 된다.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사도 2,2)

 

그림 뒤 배경에는 살짝 열려 있는 문이 보인다. 성경에서 성령이라는 말은 고유한 형태가 아닌 무정형의 단어로 바람(風), 숨, 입김(氣息)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루아(Ruah)’로 사용된다. 화가는 바람이 지나간 것처럼 바람의 이미지로 성령을 표현하고 있다. 바람은 가까이 있으나 보이지 않는 성령의 상징이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요한 3,8) 천장에서부터 내려오는 붉은색 줄기의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사도 2,3) 불꽃은 성령을 상징한다. 발산하는 빛은 모든 어두운 위험을 무릅쓴 하느님 현존을 의미한다. 하느님께서는 빛의 근원인 성령의 뜨거운 불꽃을 전달하고 계신다. 이 불꽃의 열기는 뜨거운 사랑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하늘로 오를 때 약속한 대로 제자들에게 사랑의 성령을 보낸 것이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마리아 왼편에는 베드로가, 오른편에는 제자 중에 가장 젊게 표현된 요한이 있다. 베드로는 왼손을 가슴에 얹은 채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성모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가슴에 손을 얹은 젊은 요한도 성령의 은총에 기쁨과 놀라움을 드러낸다. 그는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자기 쪽으로 집중시켜, 성령의 불로 뜨거워진 공간 속으로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제자들은 집 안에서 숨어 지내며 많은 좌절감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예수님께서는 그가 사랑하는 어머니와 제자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신다. 성령은 하느님의 숨결로 다가온 바람과 생명의 힘인 불꽃으로 이들 각자의 마음에 도달되며,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 증거자로써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용기 있게 전할 준비가 된 것이다.

 

[2014년 6월 8일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