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수난의 도구 - 카르파초
1496, 캔버스에 유채, 162x163cm, 역사와 미술 시립박물관, 우디네
[말씀이 있는 그림] 생명의 몸과 피
카르파초(Vittore Carpaccio, 1460경~1525/26, 베네치아 화파)는 작품에서 풍부하고 조화로운 색채와 빛 처리, 안정된 공간으로 고전적인 화면을 구성한다. 화가는 그림 중앙에 서 계신 예수님의 형상을 중심으로 그림의 주제(성체성사)를 전개한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우디네에 산 피에트로 마르티레 성당을 위한 것으로 예수님의 발아래 단위에 그려진 작은 종이에 화가의 서명(Victorjs Charpatjo/ Venetj.opus)과 제작 연도(1496)가 기재돼 있다.
중앙의 두 천사는 하늘에서 커다란 붉은 장막을 잡고 있고, 그것을 배경으로 예수님이 서 계신다. 장막은 예수님의 육화(肉化)를 의미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는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장막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님은 왼쪽 팔에 순교의 상징인 십자가를 안고 있으며, 오른쪽 팔은 발아래 성작을 가리키고 계신다. 예수님의 양손과 가슴에서 한 줄기씩 흘러내리는 피는 바닥에 놓인 성작으로 모이고 성체 모양으로 변한다. 성체성사의 신비를 상징한다. 예수님의 손발과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인류에게 흐르는 사랑의 표징이다. 마치 땅에서 안개가 솟아올라 땅거죽을 모두 적셨던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듯이(창세 2,6-7), 창으로 찔린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와(요한 19,34) 세상 모든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하실 것이다. 성령의 표징과도 같은 예수님의 피와 물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내어주는 것이다.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요한 7,38-39)
예수님 양옆에 대칭적으로 자리한 네 명의 천사는 망연자실과 슬픈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다. 이들 각자의 손에는 예수님의 수난도구들을 들고 있다. 그림 왼쪽부터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옆구리를 찔렀다는 창, 예수님의 손과 발에 박은 못들, 고문할 때 사용한 채찍, 그리고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기 전 갈대에 신포도주를 적셔 마시게 한 해면이 있다. 또한 십자가 위에는 ‘유다인들의 임금(INRI)’이라는 죄명 패와 가시관이 걸려있다. 결국, 이러한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의 상징 도구는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위한 사랑(희생)의 도구가 된다. 화가는 이러한 예수님의 희생을 그림 중간 오른쪽에 표범이 사슴을 찢어 피가 흐르는 모습으로도 가시화시키고 있다.
장막을 뒤로 멀리 집들과 성당, 성과 성벽이 보인다. 왼쪽에는 산 피에트로 마르티레 성당이 있고, 오른쪽에는 우디네 도시의 언덕위에 성이 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힘과 죽음의 세상을 암시하는 성과 잔혹한 표범이, 왼쪽에는 평화로운 세상을 암시하는 성당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사슴이 배치되어 있다.
성체성사의 신비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1코린 11,29)라는 경고의 말을 상기시킨다. 거룩한 성체성사를 모시기 위해서는 서로 사랑과 일치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7)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