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에게 열쇠를 수여하는 그리스도 - 라파엘로
1515-16, 종이에 템페라, 345x535cm,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런던
[말씀이 있는 그림] 교회의 반석
교황 레오 10세(Leone X)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소성당 벽장식을 위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이야기로 짜진 아라찌(Arazzi, 태피스트리로 다채로운 색실로 무늬를 짜 넣은 직물)를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에게 주문했다. 라파엘로는 1515년에서 1516년까지 종이에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들은 천으로 짜기 위해 브뤼셀로 가져갔다. 이 아라찌는 초대 교황인 성 베드로의 전도사업과 기적, 첫 복음자인 성 바오로의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의 복음전도 등의 장면을 시리즈로 묘사하였다. 1524년까지 천 작업을 끝낸 작품들은 시스티나 소성당의 옆벽 프레스코화 아래에 있었으나, 카알 5세 군대의 ‘로마 약탈(1527)’ 이후 여러 군데로 나누어져 있어 지금은 바티칸 박물관내 회화관에 소장되어 있다.
라파엘로의 <성 베드로에게 열쇠를 수여하는 그리스도> 작품은 아라찌 작업을 위해 먼저 종이에 템페라로 그린 작품 중 하나이다. 그림은 넓게 펼쳐진 마을 풍경을 배경으로 왼쪽에는 예수님이 혼자서 계시고, 조금 간격을 두고 오른쪽으로는 제자들이 운집해 있다. 화면 왼쪽의 예수님은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고 있다. 부활한 예수님의 모습은 죽음에서 승리를 의미하는 흰색 망토와 십자가 위에 못 박히셨던 손과 발의 못 자국으로 알 수 있다. 곧은 자세로 서 계신 예수님은 양팔을 벌리고 계시는데, 길게 뻗은 왼팔은 베드로를 가리키고 오른팔은 양 떼를 가리키고 계신다. 무릎을 꿇고 있는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주신 하늘나라의 열쇠를 상징하는 열쇠를 가슴에 꼭 품고 있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 16,19) 열고 잠그는 기능을 가진 열쇠는 성경에서 권위를 상징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열쇠를 수여하여 매고 풀 수 있는 권한을 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가 예언했듯이 주님께서 엘야킴을 예루살렘의 최고 관리자로 세울 때처럼, 베드로에게 아버지로서 교회를 다스리도록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 주민들과 유다 집안의 아버지가 되리라.”(이사 22,21) 예수님의 왼손이 베드로를 가리키는 동시에 그의 오른손이 양 떼를 가리키는 모습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5)는 말씀을 상기시킨다.
무릎 꿇은 베드로 바로 옆에는 제자들 가운데 가장 젊은 요한이 두 손을 모은 채 예수님을 애타게 바라보고 있다. 제자들은 모두 열 한 명이다. 그 까닭은 라파엘로가 부활 후의 예수님의 이야기를 기초로 한 요한 복음서를 토대로 이 주제의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화면 오른쪽 중간에는 뱃머리만 보이는 한 척의 배가 놓여있다. 배는 교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초대교회 때부터 세상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상징이었다. 배가 교회의 상징처럼 베드로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라 하셨다. 화면 오른쪽 배경 멀리에는 로마의 웅장하고 단단한 성 베드로 성당의 돔이 작게 보인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반석이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건물의 ‘초석’으로 온갖 폭풍을 굳건하게 잘 견뎌낼 건물을 세우신 것이다.
“나의 이 말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모두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마태 7,24-25)
[2014년 8월 24일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