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사 하인리히 주조 - 수르바란
1636-38, 캔버스에 유채, 209x154cm, 세비야 주립 미술관, 스페인
[말씀이 있는 그림] 가슴에 새긴 십자가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an 1598.11.7 ~ 1664.8.27>은 스페인 바로크 회화의 대표 화가로, 이탈리아의 바로크 사실주의와 명암대조기법(테네브리즘)을 사용하여 스페인의 최고의 영성적 미술을 꽃피운 그의 화풍은, 초상화와 정물화에 적합했지만, 종교화에서 가장 독특한 표현으로 빛을 냈다. 수르바란은 대부분 세비아에 있는 오래된 수도원이나 성당에서 의뢰한 작품들을 제작했는데, 사도 · 성인 · 수사들이 겪은 기적 · 환상 · 황홀경의 묘사에 사실주의를 적용함으로써 그 호소력을 힘껏 높였다. 13세기 초부터 예수님이 겪은 고통과 그의 인간적인 면을 강조한 새로운 신앙적 흐름이 형성되었다.
중세 말부터 전해오는 가톨릭 묵상법 가운데 하나인 보나벤투라의 「그리스도 일생 명상」은 “그러므로 여기에서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신 일이다.’라고 할 때에, 그것이 성경에 나와 있지 않더라도 이를 영적 명상의 조건으로 간주해야 한다. 내가 마치 ‘예수님께서 이러이러한 일을 하셨다고 가정해보자.’라고 말한 것처럼 받아들여라. 그리고 이 명상에서 영적 혜택을 받으려고 한다면 세속의 걱정거리를 모두 떨쳐버리고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그 순간에 항상 함께하라.”고 말하고 있다. 묵상적 이미지를 그려내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와 대화를 나누는 신비를 체험할 수 있어서다. 묵상할 때 마음을 집중해 마치 그리스도의 수난이 실제로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상상할 필요가 있다. 슬픔 속에서 우리는 마치 예수님께서 당하시는 수난을 우리가 직접 당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으며, 예수님께서 당신의 기도를 직접 받아들이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그림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은 18세 나이에 콘스탄스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원에 입교한 하인리히 주조(Heinrich Suso, 1295-1366) 수사의 모습이다. 그는 독일의 대표적인 신비주의자의 한 사람이자, 시감각을 활용하는 영성수련법을 개발하였다. 주조는 고개를 하늘로 향한 채, 무엇인가 가슴에 새기고 있다. 얼굴은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이다. 하늘을 향한 눈동자와 약간 입을 벌린 상태, 그의 얼굴에 비친 빛은 황홀경에 빠져있는 신비감을 보여준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주조는 예수님의 수난을 자신의 몸을 통해서 받아들이고자 자신의 가슴에 십자가를 못으로 박은 상태로 생활했다고 한다. 그림은 주조가 가슴에 날카로운 도구로 자신의 가슴에 예수님 이름인 이니셜인 IHS를 새기고 있는 장면이다. 이 행위 자체를 지금 우리의 시각으로 본다면 매우 비상식적이고 가학적인 측면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세 종교적 측면으로 볼 때, 이것은 예수님을 향한 사랑에 대한 단순한 신체적 고행을 초월하여 자신의 몸을 하나의 영성의 도구로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조의 뒤에는 그에 관한 이야기들이 목가적 배경 속에 묘사되어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그가 샘물 앞에서도 갈증을 참고 견디며 고행하는 장면이, 왼쪽 아래에는 동료에게 자신의 가슴에 새긴 예수님의 이름을 보여주는 장면과 그 뒤로 천사가 주조를 기도 장소인 작은 경당으로 인도하는 장면이다.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고 고난을 겪고 돌아가신 예수님처럼 주조는 기꺼이 고행의 길을 짊어진 것이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고통스럽지만, 하느님께서 결코 자신을 저버리지 않으리라는 깊은 신뢰심을 가지고 “자신을 버리고” 예수님께서 사셨던 방식으로 육체적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삶을 따른 것이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쁨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요한 16,20)
[2014년 8월 31일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