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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화 & 이콘

명상 중인 요한 세례자 - 히에로니무스 보스

by 파스칼바이런 2014. 12. 30.

 

 

 

명상 중인 요한 세례자 - 히에로니무스 보스

1489년경, 목판에 유채, 48,5x40cm, 라자로 갈디아노 박물관, 마드리드

 

 

[말씀이 있는 그림] 하느님께서 보내신 요한 세례자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Bosch. 1450~1516년)는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신비로움에 싸인 화가로 알려졌으며, 그의 단조로운 삶에 비해 작품들은 상상력이 가득하다. 그림 속에는 신비주의와 공포, 선과 악, 영적인 긴장과 미신, 민중들의 격언, 인문주의적 요소 등이 혼합돼 있다. 보스의 작품에는 중세의 상상력이 넘치는 이야기와 인문주의적 직관이 혼재된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보스의 풍부한 상상력은 요한 세례자를 묘사한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광야로 나간 요한 세례자는 거기서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 매우 비옥한 평야를 가진 요르단 부근이긴 했지만, 성경이 묘사하는 바로는 그 광야는 차라리 살 수 없는 땅에 가깝다. 그러나 많은 명화(名畵)에서는 그곳을 매우 쾌적하고 낭만적인 풍경으로 묘사하곤 한다. 사실상, ‘광야의 요한 세례자’의 주제는 화가 시대에 유행과 개성에 따라 자연에 대한 미학적 이론을 토대로 실제 혹은 상상의 풍경으로 그려진다. 보스는 광야에서 묵상에 잠겨 있는 요한 세례자의 평화로운 모습을 담고 있다. 요한의 상징물인 어린 양이 오른쪽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광야의 풍경은 보스가 창조해낸 상상의 기이한 동식물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요한 세례자는 손을 머리에 대고 자신의 죄의 고백과 고독하고 앞으로 전개될 그리스도에 관한 묵상에 빠져 있다. 요한 세례자의 등장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요한 1,6), “빛을 증언하는 사람”(요한 1,7), “신랑의 친구”(요한 3,29)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시키기 위함이다. 광야에서 혼자인 요한 세례자의 모습은 지극히 평화롭다. 그의 옆에 놓인 기이한 식물 줄기 끝에는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 있다. 까마귀는 검은 깃털과 동물의 사체를 먹는 습관 때문에 부정하고 흉조로 전해지지만, 사람에게 유익한 도구, ‘하느님의 봉사자’로도 의미를 가진다. 곤경에 처한 예언자 엘리야가 아합 왕을 피해 주님의 말씀대로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로 가서 머물렀을 때, “까마귀들이 그에게 아침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고, 저녁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다.”(1열왕 17,6) 그림에서 까마귀는 요한 세례자가 “주님의 길을 곧게 내기” 위해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임을 강조하고 있다.

 

왼쪽 계곡(요르단 강)은 들판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져 산을 만나고 하늘과 연결된다. 보스의 특별한 상상력은 이국적인 식물과 야생 동물과 다양한 조류의 묘사에서 발휘되고 있다. 요한 세례자의 뒤 배경에 풀을 뜯는 사슴은 생명의 하느님을 그리워하며, 만나기를 갈망하는 충실한 신자,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될 하느님 백성을 상징한다. 멧돼지는 악마의 힘을 상징한다. 보스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선과 악의 반영인 것이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는 어린 양이 보인다. 고행의 상징인 맨발을 한 요한 세례자는 오른손 검지로 몸을 숨긴 듯한 어린 양을 가리키고 있다. 어린양은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희생으로 한 몸을 바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요한 세례자는 마치 감상자를 향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이신 예수님이 하느님께 피의 제물로 바쳐진 구세주임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 같다.

 

“여러분도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야고 5,8)

 

[2014년 12월 14일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