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이로 딸의 소생 - 산티 디 티토 1578년, 109,5x83cm, 미술사 박물관, 빈
[말씀이 있는 그림] 믿어라
카파르나움 회당을 관리하던 회당장 야이로는 죽어가고 있는 딸의 치유를 고대하며, 예수님을 찾아간다. 그는 티베리아 호수의 동쪽 연안에서 돌아오는 중인 예수님을 직접 찾아가 간청한다. 사실 당시 회당장이라면 유다교에서 지도자 위치로 상당히 권위와 지위를 인정받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그가 예수님을 찾아가 “발 앞에 엎드려”(마르 5,22) 딸의 치유를 간청했다는 것은 야이로의 절박한 심정과 예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의 표시이다. 또한 그의 행동으로 예수님의 명성이 일반 군중뿐 아니라 종교 지도자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여 그의 딸이 누워 있는 침대 옆에 서 계신다. 그러나 이미 어린 소녀는 예수님과 일행이 집에 도착하기 전에 죽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야이로 딸의 소생’ 기적이야기를 다룬 그림들에는 어린 시신이 침대에 눕혀져 있고 그 주변과 방 밖에서 많은 사람이 애처로워하며 눈물짓는 광경이나 이미 소생하여 일어난 장면이 묘사되곤 한다. 이 작품의 분위기는 소녀의 죽음에 대한 가여움과 안타까움보다는 생명의 기운이 감돈다. 화가는 화면 앞에 개와 놀고 있는 아이를 그려 유년의 즐거운 시간을 연상시키고 있다. 침대 기둥에는 침대에 누워 있는 어린 소녀와 닮은 모습을 한 미소 짓는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이는 예수님께서 죽은 아이의 손을 잡아 “일어나라”고 명령하신 후, 아이에게 다가올 티 없이 순진무구한 행복을 의미한다. 침대 위의 아기 천사들도 닫혀 있던 장막을 걷어내며 어둠에서 빛을, 죽음에서 삶을 찾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방 안에 세 명의 제자와 소녀의 부모만을 데리고 간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고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신 것이다. 그런데 화가는 오른쪽 뒤에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두 인물을 등장시키고 있다. 이 두 인물은 서로 마주 보고 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수군거리며 의아해하는 표정이다. 두 사람은 아이가 이미 죽었으니 예수님을 더는 수고스럽게 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 주변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다. 이들은 참 생명보다 눈에 보이는 현세적 생명만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반면, 그림 왼쪽부터 요한과 베드로 그리고 야고보가 자리하고 있고, 오른쪽에 소녀의 부모 야이로와 그의 아내가 서 있다. 야이로의 표정과 두 손을 꼭 모은 부인의 동작은 딸을 살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소녀 부모의 시선 역시 딸을 향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하고 있어 예수님만이 그들의 간절한 소망을 채워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놀랍게도 야이로의 딸은 죽어가는 생명이 아니라 이미 죽은 생명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님만이 생명의 주님으로 권위와 능력을 지니신 분이라는 것을 믿으며 그들의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한 것이다. 소녀의 부모는 딸의 소생에 대한 직접적인 증인이 된다. 제자들도 소녀의 소생을 지켜본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소녀의 소생을 보게 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직접적인 증인들로서 세 제자를 선택하신 것을 뜻한다. 요한의 손가락은 베드로를 바라보며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믿는 이들이 약속을 받게 되었습니다.”(갈라 3,22)
[2015년 6월 28일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
'<가톨릭 관련> > ◆ 성화 & 이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교회의 초석 김대건 신부님 - 정미연 (0) | 2015.07.09 |
---|---|
[정미연 화가의 그림으로 읽는 복음]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0) | 2015.07.08 |
죽음도 이기시는 예수님의 메시지 - 정미연 (0) | 2015.07.04 |
[정미연 화가의 그림으로 읽는 복음] 교황 주일 (0) | 2015.06.29 |
풍랑을 가라앉히시는 그리스도 (0) | 2015.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