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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성경의 세계] 다윗 이야기 (4)

by 파스칼바이런 2017. 1. 3.

[성경의 세계] 다윗 이야기 (4)

 

 

 

 

다윗은 헤브론에서 임금이 되지만 유다의 왕이었다. 이스라엘 왕은 사울의 넷째아들 이스보셋이었다(2사무 2,9). 유다와 이스라엘은 민족의 뿌리는 같았지만 개별국가로 존재했다. 그러기에 서로 다른 왕이 있었던 것이다. 솔로몬이 죽자 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진다. 기원전 931년의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두 국가로 분리된 것은 아니다. 다윗 이전상태로 돌아갔을 뿐이다. 이후 남북왕조는 통합되지 않고 200년 이상 대치하다 북이스라엘이 먼저 망했다(기원전 722년). 하지만 남쪽 유다는 동족이 사라졌다기보다 이웃 국가가 없어진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만큼 남남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해 사막을 떠돌 때는 함께 살았다. 12지파는 장막 중심으로 움직이는 공동체였다. 하지만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달라진다. 땅 분배로 흩어졌고 그런 상태로 200년 넘게 살았기 때문이다. 기원전 1200년경부터 1000년까지로 성경의 판관 시대다. 당시 남부지역은 유다 지파가 장악했다. 이곳엔 성지 헤브론이 있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묘가 있는 도시다. 여호수아는 헤브론을 유다 지파 칼렙에게 주었고(여호 14.13). 남쪽 땅 대부분을 유다 지파에 분배했던 것이다. 강력한 단일 공동체의 등장이었다. 훗날 벤야민 지파 일부도 유다 공동체에 속하게 된다.

 

여호수아의 에프라임 지파는 중부지역에 살았다. 남과 북이 연결되는 훗날의 사마리아다. 이곳에도 베텔 성지가 있었다. 야곱이 주님을 만났던 장소다(창세 29,19). 에프라임 지파를 축으로 북쪽이 연대한 공동체가 이스라엘이다. 이후 12지파는 이스라엘과 유다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200년을 독자적으로 살았던 것이다. 지파들을 다시 뭉치게 한 것은 필리스티아인의 침략이었다. 한시적 권한을 가진 판관으로는 대응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강력 대응을 위해 왕정이 요구되었고 이스라엘이 먼저 사울을 왕으로 뽑았다. 그리고 사울은 평생을 필리스티아인과 싸우다 전쟁터에서 죽었다. 유다 공동체에서 처음 선택한 왕은 다윗이었다(2사무 2,4).

 

임금이 된 다윗은 북쪽을 통합하려 했다. 그래서 수도를 신도시 예루살렘으로 옮겼고 새로운 성전을 구상했다. 전례와 제사의 일치가 지파의 일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계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중대한 이유다(2사무 6장). 다윗은 구약성경에 800번 이상 등장한다. 그만큼 유대인 심층 깊숙이 뿌리내린 인물이다. 족보로는 예수님의 조상이 된다.

 

[2016년 12월 11일 대림 제3주일(자선 주일) 신은근 바오로 신부(의령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