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용 시인 / 滴―떨켜 2
겨울 숲에 들면 보이지, 발가벗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는 나목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어서 도리어 쳐다보는 눈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눈 맞으며 비 맞으며 겨울 삭풍에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 있는 나무를 보며, 번번이 연민에 젖는 것은, 그래, 언제나 사람들의 눈이어서, 바다 위를 아슬아슬하게 나는 나비를 보는 듯한 사람의 시선이어서, 도리어 내가 추워지는 것, 내가 추워져, 허공으로 빈 가지를 뻗은 나목처럼 내 텅 빈 손을 내밀고 싶어져,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빈 손바닥뿐이겠지만, 빈 손바닥뿐이므로 더욱 더 손을 내밀고 싶어져……
그렇게 겨울 숲에 비쳐 보이는, 내 앙상한 내면만 더욱 도드라져 보여……
저것 봐! 저 자작나무는 맨몸으로 섰어도 제 생을, 自作하고 있다
홀로 바람을 自酌하며, 허공의 엽맥처럼 보이는 빈 가지로도 의연히 서 있다
간혹 겨우살이가, 막무가내 무허가로 세를 들어 집세 한 푼 안내고, 광합성의 푸른빛을 내밀고 있어도 나무는 모르는 척,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렇게 나목이 되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제 생을 경작하는 것
그래, 겨울 숲에 들면 보이지 잎 다 떨구고도, 무연히 서 있는 나무들이―.
자신도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뿌리를 버리고 흙으로 되돌아 갈 줄 아는―.
계간 『시와 경계』 2017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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