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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신용 시인 / 滴―떨켜 2

by 파스칼바이런 2019. 2. 16.

김신용 시인 / ―떨켜 2

 

 

겨울 숲에 들면 보이지,

발가벗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는 나목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어서 도리어 쳐다보는 눈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눈 맞으며 비 맞으며 겨울 삭풍에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 있는 나무를 보며, 번번이 연민에 젖는 것은, 그래, 언제나 사람들의 눈이어서, 바다 위를 아슬아슬하게 나는 나비를 보는 듯한 사람의 시선이어서, 도리어 내가 추워지는 것, 내가 추워져, 허공으로 빈 가지를 뻗은 나목처럼 내 텅 빈 손을 내밀고 싶어져,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빈 손바닥뿐이겠지만, 빈 손바닥뿐이므로 더욱 더 손을 내밀고 싶어져……

 

그렇게 겨울 숲에 비쳐 보이는, 내 앙상한 내면만 더욱 도드라져 보여……

 

저것 봐! 저 자작나무는 맨몸으로 섰어도

제 생을, 自作하고 있다

 

홀로 바람을 自酌하며, 허공의 엽맥처럼 보이는 빈 가지로도 의연히 서 있다

 

간혹 겨우살이가, 막무가내 무허가로 세를 들어

집세 한 푼 안내고, 광합성의 푸른빛을 내밀고 있어도

나무는 모르는 척,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렇게 나목이 되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제 생을 경작하는 것

 

그래, 겨울 숲에 들면 보이지

잎 다 떨구고도, 무연히 서 있는 나무들이―.

 

자신도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뿌리를 버리고 흙으로 되돌아 갈 줄 아는―.

 

계간 『시와 경계』 2017년 여름호 발표

 

 


 

김신용 시인

1945년 부산에서 출생. 1988년 시  전문  무크지 《현대시사상》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 외 6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저서로는 시집으로 『버려진 사람들』, 『개 같은 날들의 기록』, 『몽유 속을 걷다』, 『환상통』, 『도장골 시편』 등과 장편소설『달은 어디에 있나 1,2』『기계 앵무새』 등이 있음.  2005년 제7회 천상병 문학상과 2006년 제6회 노작문학상,  2013년 제6회 시인광장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