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옥 시인 / 꽃들의 역습
꽃은 이제 달빛이다 달빛을 그럴듯하게 찍어낸다 월광초(月光草)를 받아내려, 내가 그곳으로 가려면 몸을 달의 형상으로 휘어야 한다
한 송이 걸렸다 나는 얼마나 오래 떨리도록 꽃을 탐했나 책상 위의 꽃들이 시큼해질 때까지 묶어 두었다 꽃들은 내 슬픔의 지지대, 이런, 달빛만 끌어당기려 했는데 줄기까지 왔다 맺음을 망가뜨렸다고 바로 공격한다 줄기의 즙, 허연 독을 내 손 거쳐 얼굴로 보냈으니 꽃만 남들보다 돋보이기를 원하는 건 아니다 그걸 들여다 볼
거울이 세상엔 너무 흔하다는 것 수십 송이의 꽃들이 때로는 운명이 그곳에 있다고 서술하기도 한다
달빛 타고 얼굴로 흘러 온 희끄무레한 독이 화끈거려라 절뚝이며 꽃들이 달빛 맞는 날 부글부글, 주위 꽃들마저 분질러 버리겠다 월광(月光)이 돋보이는 날 찾아 갈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꽃들을 어루었다
계간 『시와 반시』 2018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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