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무희 최대남 시인
나는 무희다 언제나 무대는 거대했다
막이 오르기 전 나는 늘 빨간 드레스를 입었다
스스로 빨갛게 피어 빨강에 갇힌 푸른 여자였다
몸이 뜨거워 살이 환히 비치는 적삼을 입고 아침부터 새벽까지 살풀이를 추었다
홀로 캉캉춤을 추다가 홀로 탱고를 추다가 그대를 향한 허기로 목이 메이면 홀로 찬밥을 먹었다
홀로 먹는 찬밥은 두어 숟가락 새벽에 흐르는 온기 없는 눈물같은 밥맛 붙잡고 싶은 내 눈빛을 그가 강한 등으로 막아섰다
당신은 너무 멀어요 그의 답신은 기다리다 기다리다가 와르르 와장창창 무너질 무렵 마른꽃잎처럼 왔다
그날 나는 이리 떼가 울부짖는 낯선 음악을 떠올리며 춤을 추었다
살고싶었다
비굴한 이 그리움
빨간 드레스에 들장미 화관을 쓰고 돌고 돌고 돌며 춤을 추었다 쓰러지면 심장을 두드려 한방울 피를 꺼내 마시고 빨간 적혈구처럼 빠르게 빠르게
접신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사랑은 수시로 굴욕이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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