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구름 권여원 시인
렌즈는 내 생각을 보고 있다 하루의 그림자가 본을 뜨면 렌즈구름이 판독한다
살아온 날들을 한 컷으로 압축하는 신의 안목은 숨 가쁘게 달려가는 사람들을 뒤돌아보게 했다
아침의 잘못을 저녁에 기록하는 건 돌이킬 시간을 얻기 위해서다 심장의 세포까지 줌으로 당겨 잔머리의 궤도까지 꿰뚫어보는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기술을 가졌다
증거불충분으로 혐의가 없어진 사건을 위해 수차례 접속했지만 저장 공간 확보를 위해 비를 내려줄 뿐, 답신은 없었다
정제된 맑은 빗방울만 떨어졌고 개인정보는 누출되지 않았다 대신 양심의 셔터가 눌러지고 죄는 저절로 허물을 벗으며 빠르게 전파를 탔다
누군가는 드러난 사생활 탓을 구름으로 돌렸지만 공소권 없음으로 막을 내렸다
지상에 렌즈구름이 출몰하는 날이면 UFO로 오인하는 해프닝 기사가 헤드라인으로 올라왔다
영혼의 뉴런을 따라가 보면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들여다본다는 촬영 의도가 구름의 첫 페이지에 기록되어있다
*렌즈 또는 비행선 모양을 이룬 구름. 구름의 가장자리가 뚜렷하다. 바람이 강하고 개기 시작할 때 많이 생긴다.
시집 『구름의 첫 페이지』(시산맥, 2018)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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