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향숙 시인 / 리듬0*
나는 무방비 상태로 전시되었다 주어진 시간은 6시간 긴 테이블엔 꽃, 칼, 와인, 빵, 금속 막대기, 면도날, 총알이 장전된 권총 의도와 상관없이 관객은 신비의 눈빛으로 나를 탐색한다 한차례 격랑으로 어지럽힌 방을 나가 꽃을 사들고 들어오는 아버지의 순해진 뒤통수를 닮아 그들을 잠깐 오해한다
꽃과 빵을 건네는 것으로 쾌락은 리듬을 탄다 눈빛이 달라지는 그들 나를 테이블에 눕히고 누군 키스를 누군 다리를 벌려 막대기를 꽂고 누군 배꼽을 쑤신다 로션을 바르는 거야, 최면은 한 계절을 통과한다 격렬한 몸부림으로 얻는 쾌락의 크기만큼 아버지는 정말 짜릿했을까? 와인은 혓바닥을 넣어 키스를 하고 면도날보다 더 쓰리게 때리는 꽃과 권총이 되는 빵 살을 베고 목덜미에서 흘러나온 장미꽃을 핥다가 장전된 권총을 내 관자놀이에 갖다 대는 사랑스런 아버지들 드디어 쾌락은 극대화된다 아버지의 쫄깃한 심장박동을 위해 죽음은 기꺼이 예비 되어 있다 면도날이 지나간 흔적과 금속막대기의 패인 상처들 손에 장미꽃을 든 아버지 가시의 위로는 또 다른 계절의 시작이다
*1974년, 세브리아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행위예술 프로젝트
계간 『시와 경계』 2018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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