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이령 시인 / 움트다

by 파스칼바이런 2019. 2. 20.

이령 시인 / 움트다

ㅡ즉시현금(卽時現金) 갱무시절(更無時節)

 

 

        네 등 뒤에 꽃을 두는 일은 서사적이다

        밤보다 깊은 새벽을 밝히는 현재의 일이다

        가고 올 시간의 흔적을 보듬는 일

        이별의 비수와 비가를 숨기기엔 이 계절이 너무 짧다

        너를 품어 꽃을 피웠지만 자리마다 물컹하다

        모든 서사는 지금, 바로지금 서정적으로 완성 된다

        지나보니 꽃 피고 잎 지나 잎 지고 꽃 피나

        무릇무릇 사랑이라 부르던 것들이 죄다 미쁘다

         

        너를 건너왔으니 나를 데려와야지

        머리를 버리고 심장을 얻었다, 가벼웠다

        흔들리던 날들이

        마른 나무에 핀 꽃 순처럼 싱싱하다

         

        울던 별들이 지면 새싹은 움 튼다

        네 등 뒤에 꽃을 두고

        걸어 온, 걸어갈 길을 벅차게 걷고 있다

 

계간 『불교문예』 2018년 겨울호 발표

 


 

이령 시인

경북 경주에서 출생. 2013년 《시사사》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 2015년 한중작가 공동시집 『망각을 거부하며』출간. 현재 웹진 『시인광장』 부주간. 동리목월기념사업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