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백 시인 / 좋은놈 나쁜놈 미친놈
박수치지 마세요. 입 다물어요. 싸구려 동정은 개나 줘요. 이것은 우리의 전쟁. 고상한 당신은 응원할 자격도 없지 본질을 흐리지 마세요.
판을 바꾸자는 게 아니잖아요. 규칙을 바꾸자는 거 왜 이해 안 돼요? 유리천장이니 소파승진이니 그딴 말 닥쳐요. 세팅된 링에서 우리끼리 치고받고 싸울 테니까. 숨어서 주판알이나 튀기겠다는 속셈이라니 포괄적이고 숭고한 생명주의를 물타기에 이용하려는 수작일랑 집어치워요.
남자 홀리려고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닌다고요? 남자들 시선을 은근히 즐긴다고요? 착각하지 마세요. 넘겨짚지 마세요. 평등을 외치려면 우리도 군대에 가라고요? 좋아요, 그럼 당신네도 애를 낳아 보시지. 그게 어디 남자 탓이냐고요? 신이 그렇게 정한 거 아니냐고요? 무기와 군대를 만든 것도 그럼 신인가요? 전쟁의 배경에는 언제나 여자들이 있다고요?
꼴통 역사학자 씻나락 까먹는 소리 작작 하세요. 비겁한 프레임 좀 씌우지 마세요. 물론 나쁜년이 있기는 해요 인정해요. 하지만 나쁜놈에 비하면 코끼리 발톱의 때죠. 간혹 미친년도 있기는 해요, 창피하지만 인정해요. 하지만 미친놈에 비하면 개미 발톱의 때죠. 세상에 좋은놈 좋은년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남녀노소 좋아요. 남녀평등 좋아요. 부부유별 좋아요. 일남일녀 좋아요. 신사숙녀 여러분까지 다 좋은데 연놈이 다 똑같다니요 왜 욕할 때만 앞인가요?
암수구별이라니요. 왜 동물일 때만 앞인가요? 언제까지 레이디 퍼스트 하나로 퉁칠 작정이죠? 과부 사정은 과부가 잘 알지, 홀아비는 개뿔도 몰라요. 암탉이 울면 수탉을 잡아넣어야지 나쁜놈은 그렇다 쳐요. 교육으로 해결하면 돼요. 미친놈은 어떻게 할 거예요, 다 쓸어버릴까요? 나쁜놈을 미치게 만드는 게 미친년이라니요. 이런 좆같은 소리를 언제까지 참아야 하죠?
좋아요 당분간은 링에서 우리끼리 박터져 보죠. 적은 내부에 있다는 사실 잘 아니까 일단 미친년들을 좀 정리하고요. 그다음에 당신네 손 좀 볼게요. 힘 좀 쓰신다고요, 그건 쥐라기 시절에나 통했지 총칼로 싸우던 중세시대나 완력이고 무력이지 아시잖아요, 우리도 할 거 다 해요 다만, 외계의 괴물과 죽기 살기로 싸울 때에도 브래지어에 핫팬티 차림이어야만 하는 우리—
얼굴까지 철갑을 두른 남정네는 쪽팔린 줄 아세요. 그러니까 정자 수가 감소하지. 괜찮아요 얼마 남지 않았어요. 머지않아 냉동정자 복제기술이 완성되고 인공자궁에 인공수정이 실용화되면 잘난 당신네 아랫도리는 딸딸이나 치라지 그때는 성철 청화 숭산 법정 법륜 혜민 같은 남자만 살아남아도 아쉬울 게 없을 테니까.
*나혜석, 록산 게이를 위하여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월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민 시인 / 텅 빈 악기 (0) | 2019.04.09 |
---|---|
오규원 시인 / 겨울 나그네 외 2편 (0) | 2019.04.09 |
오탁번 시인 / 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0) | 2019.04.08 |
최승철 시인 / 사과의 시간 외 1편 (0) | 2019.04.08 |
박순희 시인 / 간병인 (0) | 2019.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