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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오규원 시인 / 겨울 나그네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4. 9.

오규원 시인 / 겨울 나그네

 

 

지난 겨울도 나의 발은

발가락 사이 그 차가운 겨울을

딛고 있었다.

아무데서나

心臟을 놓고

기웃등, 기웃등 消滅을

딛고 있었다.

 

그 곁에서

계절은 歸路를 덮고 있었다.

母音을 분분히 싸고 도는

認識이 나무들이

그냥

서서 하루를 이고 있었다.

 

지난 겨울도 이번 겨울과

同一했다.

겨울을 밟고 선 내 곁에서

同一했다.

마음을 할 수 없는 사랑이며, 사랑……

 

內外들의 사랑을 울고 있는 비둘기

따스한 날을 쪼고 있는 곁에서

 同一했다.

 

모든 나는 왜 理由를 모를까.

어디서나 기웃등, 기웃등 하며,

나는 獲得을 딛고

발은 歸路을 딛고 있었다.

 

끝없는 祝福.

떨어진 것은 恨 대로 다 떨어지고

그 밑에서 무게를 받는 日月이여,

모두 떨어져 덤숙히 쌓인 위에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발자국이 하나씩 남는다.

 

손은 必要를 저으며 떨어져나가고

손은 필요를 저으며 떨어져나가고,

서서 作別을 지지하는 밤

발가락 사이 이 차가운 겨울을

부수며

무엇인가 아낌없이 주어버리며

오늘도 딛고 있다.

 

바람을 흔들며 선 古木밑

죽은 言語들이 히죽히죽 하얗게 웃고 있는

겨울을,

첨탑에서 安息日을 우는 鐘이

얼어서 얼어서 들려오는

겨울을,

이번 겨울도 나의 발은

기웃등, 기웃등 消滅을 딛고

日月이 부서지는 소리

그 밑 누군가가 무게를 받들고……

 

월간 『현대문학』 1965년 초회 추천

 

 


 

 

오규원 시인 / 雨季의 시

 

 

  빗속으로 달음질쳐 너는 가고

  지금

  네가 남긴 한짝의 신발에

  안개가 괸다.

  눈을 감고 기억을 밀며

  안개가 괸다.

  나는 젖은 사방.

  나는 오로지 기간에 기대어

  따금씩 상실과 획득 그 사이

  뚜욱 뚜욱 떨어지는 빗방울의

  중량을 받는다.

  구속에서 가능했던 너의

  자유의 땅, 가운데서 나는 있다.

  그곳을 덮은 우거진 숲인 나.

  가지 끝에 미명을 사르던

  잎새들의 통합을 조용히 받는다.

  붉디붉은 입술로 햇살의

  投情을 빨던 꽃나무들이

  하나의 기호로 무르익은 것

  던져진 육신을 받는다.

  계절은 지난날 치닥거리던

  그 시간들을 석방했다.

 

  잃어버린 의미 속에서 混性을

  그냥 웃어버린 일월이 덮친다.

  스물 네개의 허이연 이빨이 열린다.

  빗속으로 달음질쳐 너는 가고.

  비 젖은 둘레에서 한갖 사실로 돌아온

  생명의 무게를 나는 주워든다.

  아니 너의 한짝 신발을 든다.

  한 짝 신발에 괸 강우량

  속으로 달음질쳐 너는 가고.

 

월간 『현대문학』 1967년 2회 추천

 

 


 

 

오규원 시인 / 몇 개의 현상

 

 

Ⅰ빛

 

1

 

떨어지는 순간

빛은

하얀 공간에

꽃병도 없이 어딘가 꽂힌

꽃이 된다.

낱말도 없이

문장에

꽂힌

한 송이의

꽃이 된다.

고층의 건물이

사방으로

훨훨 날아다니는,  

젊은이들이

중풍에 걸린

개를 타고 돌아다니는

어느

삭막한 나라에서

신의

손에서 풀려나오는 순간

빛은

미친듯이 확확 타는 꽃이 된다.

 

2

 

그는

알 수 없는 종교가 되어

공중에

빛나고 있다.

그는

변신하여

떨어진다.

땅 위에서

반짝이는 사람의 눈과 눈 속에

조용히 쉬며

빛나고 있다.

알 수 없는 낱말과 눈짓이

출렁거리고 있다.

 

Ⅱ 환상의 땅

 

고요한 환상의

출장소

뜰, 뜰의

달콤한 구석에서

언어들이

쉬고 있다.

추상의 나뭇가지에

살고 있는

언어들 중의

몇몇은

위험한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다

떨어져 죽고,

나의

고장난 수도꼭지에서도

뚜욱 뚜욱

언어들이 죽는다.

건강한 언어의

아이들은

어미의 둥지에서

알을 까고,

고요한 환상의

출장소

뜰에

새가 되어

내려와 쉰다.

의식의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쉰다.

 

월간 『현대문학』 1968년 추천 완료

 

 


 

오규원[吳圭原, 1941.12.29~2007.2.2] 시인

1941년 경남 삼랑진에서 출생. 부산사범학교를 거쳐 동아대 법학과를 졸업. 1965년 《현대문학》에 〈겨울 나그네〉가 초회 추천되고, 1968년 「몇 개의 현상」이 추천 완료되어  등단. 시집으로『분명한 사건』, 『순례』,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 『이 땅에 씌어지는 抒情詩』 『가끔은 주목받는 生이고 싶다』

 『사랑의 감옥』 『길, 골목,호텔 그리고 강물소리』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오규원 시 전집』 1 ·2 등과 시선집 『한 잎의 여자』 그리고  유고시집 『두두』가 있음. 그밖의 저서로는 시론집 『현실과 극기』,  『언어와 삶』 등과 『현대시작법』이 있음. 현대문학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대한민국예술상 등을 수상.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역임. 2007년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