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철 시인 / 사과의 시간
내가 당신 손을 꽉 잡으면 따뜻한 하나의 사과가 만들어 집니다. 나는 사과 한 개를 쥐고 이제는 첫사랑도 늦은 사랑도 아닌 사과의 시간을 가지고 갑니다.
당신은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줍니다. 사과는 그 안쪽으로 향이 진해집니다. 붉은 태양이 괸 물 위로 비칩니다.
당신은 괸 물 위로 떨어진 빗방울 같습니다. 당신의 젖가슴을 두드려봅니다. 출렁거리는 따스한 동심원을 따라 나도 당신의 젖가슴을 깨물어봅니다. 사과의 시간으로 꽉 깨물어봅니다. 훗날 당신의 젖꼭지를 사과 빛으로 그리워할 수 있을까요. 지금 내 손안에서 잡히는 당신이란 이 질감으로
사과 한 알 속으로 들어가 나는 붉어진 가을 햇살의 기울기가 됩니다. 처음 당신의 고백처럼 키스해주세요, 세상의 모든 내밀한 순간들을 깨닫고 싶어요.
당신 손 안의 사과가 점점 내 몸의 붉음으로 번집니다 온 몸이 사과의 실핏줄로 팔딱거립니다. 나와 사과 사이의 거리가 우주의 시간처럼 고요한 붉음이 됩니다. 이제 막 내가 당신의 입술 속을 헤집으며 다가가는 시간.
계간 『시인정신』 2017년 여름호 발표
최승철 시인 / 열애 1
장미는 내부를 밀어 꽃을 피우고 바다는 마음을 밀어 밀물을 만듭니다. 당신의 혀가 내 입술 속으로 들어왔을 때, 카리브 해안의 돌고래는 수면 위로 몸을 뒤척이며 거친 숨소리를 뿜어냈을 겁니다. 당신 머리카락이 내 어깨를 스치며 젖가슴이 작게 한번 부풀어 올랐다가 낮아질 때, 늦은 저녁 바람에서 잘 익은 빵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활활 불타오르는 불도 자신의 내부를 밀어 올렸을 장미꽃에서 모닥불 냄새가 났습니다.
본질은 질문에 가까워 당신의 흐느낌 또한 들리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던 당신의 손길이 내 가슴에 닿는 순간, 벚꽃이 만개한 저녁의 달빛, 혹은 당신 가슴에 내 가슴이 가닿는 순간, 당신 콧잔등에 둥근 땀이 맺혀집니다. ‘만다라’ 라는 낱말은 ‘원(圓)’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의 음(音)을 따라 번역한 것입니다.
당신이 나에게 다가올 때 물고기가 물결 속을 파고 들어가는 소리 가득해집니다.
서로에게 꽃 진 자리마다 더불어 육체의 감각(感覺)이 남는다는 것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빨간 사과 껍질이 처음으로 맺힌 이슬 속을 투명하게 비치는 빨간 빛, 어떤 사랑인들 불이 처음 허공을 매만지던 기억을 잊을 수 있을까요. 그 뜨거움으로 나는 당신의 젖가슴을 매만집니다 첫 숨결의 설레임 속으로 들어가 보면 모두가 기도하는 자세를 닮았습니다.
한 몸에게 다른 한 몸이 다가와 속삭이는 소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꽃잎의 속도로 달빛에 젖습니다.
계간 『파란』 2016년 여름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규원 시인 / 겨울 나그네 외 2편 (0) | 2019.04.09 |
---|---|
오탁번 시인 / 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0) | 2019.04.08 |
박순희 시인 / 간병인 (0) | 2019.04.08 |
한길수 시인 / 철새의 기원 (0) | 2019.04.08 |
봉윤숙 시인 / 시냇물에게 연차휴가를 주다 (0) | 2019.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