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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승철 시인 / 사과의 시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19. 4. 8.

최승철 시인 / 사과의 시간

 

 

내가 당신 손을 꽉 잡으면

따뜻한 하나의 사과가 만들어 집니다.

나는 사과 한 개를 쥐고

이제는 첫사랑도 늦은 사랑도 아닌

사과의 시간을 가지고 갑니다.

 

당신은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아줍니다.

사과는 그 안쪽으로 향이 진해집니다.

붉은 태양이 괸 물 위로 비칩니다.

 

당신은 괸 물 위로 떨어진

빗방울 같습니다.

당신의 젖가슴을 두드려봅니다.

출렁거리는 따스한 동심원을 따라

나도 당신의 젖가슴을 깨물어봅니다.

사과의 시간으로 꽉 깨물어봅니다.

훗날 당신의 젖꼭지를 사과 빛으로 그리워할 수 있을까요.

지금 내 손안에서 잡히는 당신이란 이 질감으로

 

사과 한 알 속으로 들어가

나는 붉어진 가을 햇살의 기울기가 됩니다.

처음 당신의 고백처럼

키스해주세요, 세상의 모든

내밀한 순간들을 깨닫고 싶어요.

 

당신 손 안의 사과가 점점

내 몸의 붉음으로 번집니다

온 몸이 사과의 실핏줄로 팔딱거립니다.

나와 사과 사이의 거리가

우주의 시간처럼

고요한 붉음이 됩니다.

이제 막 내가 당신의 입술 속을

헤집으며 다가가는 시간.

 

계간 『시인정신』 2017년 여름호 발표

 

 


 

 

최승철 시인 / 열애 1

 

 

장미는 내부를 밀어 꽃을 피우고 바다는 마음을 밀어 밀물을 만듭니다. 당신의 혀가 내 입술 속으로 들어왔을 때, 카리브 해안의 돌고래는 수면 위로 몸을 뒤척이며 거친 숨소리를 뿜어냈을 겁니다. 당신 머리카락이 내 어깨를 스치며 젖가슴이 작게 한번 부풀어 올랐다가 낮아질 때, 늦은 저녁 바람에서 잘 익은 빵 냄새가 풍겨왔습니다.

 

활활 불타오르는 불도 자신의 내부를 밀어 올렸을

장미꽃에서 모닥불 냄새가 났습니다.

 

본질은 질문에 가까워 당신의 흐느낌 또한 들리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던 당신의 손길이 내 가슴에 닿는 순간, 벚꽃이 만개한 저녁의 달빛, 혹은 당신 가슴에 내 가슴이 가닿는 순간, 당신 콧잔등에 둥근 땀이 맺혀집니다. ‘만다라’ 라는 낱말은 ‘원(圓)’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의 음(音)을 따라 번역한 것입니다.

 

당신이 나에게 다가올 때

물고기가 물결 속을 파고 들어가는 소리 가득해집니다.

 

서로에게 꽃 진 자리마다 더불어 육체의 감각(感覺)이 남는다는 것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빨간 사과 껍질이 처음으로 맺힌 이슬 속을 투명하게 비치는 빨간 빛, 어떤 사랑인들 불이 처음 허공을 매만지던 기억을 잊을 수 있을까요. 그 뜨거움으로 나는 당신의 젖가슴을 매만집니다 첫 숨결의 설레임 속으로 들어가 보면 모두가 기도하는 자세를 닮았습니다.

 

한 몸에게 다른 한 몸이 다가와 속삭이는 소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꽃잎의 속도로 달빛에 젖습니다.

 

계간 『파란』 2016년 여름호 발표

 

 


 

최승철 시인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석사 졸업. 2002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갑을 시티』(문예중앙, 2012), 『갑을 시티』(문예중앙, 2012)와『키위 도서관』(천년의시작, 2014)이 있음. 2006년 문예진흥기금 신진작가 창작 지원금 수혜. 2012년 대산 창작기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