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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순희 시인 / 간병인

by 파스칼바이런 2019. 4. 8.

박순희 시인 / 간병인

 

 

      쓰러진 것들은 한 곳만 향한다

       

      병을 지키는 직업이 있다

      끈에 묶인 몸, 혹은 병이 오래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한 밤 통증의 결박을 풀고 뒤척거리는 몸

      문득, 떠나려는 것들과

      남아있으려는 것들이 뒤바뀐 것 같다

       

      병을 보러오는 사람들이 있고 병을 꾀어내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병을 지키는 간병인

       

      여든다섯 숫자로 돌아눕는 통증의 집

      벽의 한 면을 오래 바라보는 검은 눈은

      어느 문 밖을 찾는 것 같다

      작은 실금을 따라 잠이 들기도 하는 병의 집

      문을 두드리는 몇 년이 문 밖의 일이라 여겼다지만

      모든 병은 문 안에서 나가려는 소리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한다

       

      꿈속 길은 길이 아니어서

      며칠을 자도 허기진 잠은 늙은 붓기가 된다

      서로가 똘똘 뭉쳐서 웅크리고 잠든 몸

      그 누구도 혼자로는 몸에 남아 있지 않겠다는 듯

      힘 가득 들어 있는 격렬한 몸이 꼭꼭 잠겨 있다

       

      병을 지키고 앉아있는 잠깐의 졸음

      그 틈으로 빠져나가는 병이 있었으면 좋겠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월호 발표

 


 

박순희 시인

2016년 오장환신인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