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희 시인 / 간병인
쓰러진 것들은 한 곳만 향한다
병을 지키는 직업이 있다 끈에 묶인 몸, 혹은 병이 오래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한 밤 통증의 결박을 풀고 뒤척거리는 몸 문득, 떠나려는 것들과 남아있으려는 것들이 뒤바뀐 것 같다
병을 보러오는 사람들이 있고 병을 꾀어내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병을 지키는 간병인
여든다섯 숫자로 돌아눕는 통증의 집 벽의 한 면을 오래 바라보는 검은 눈은 어느 문 밖을 찾는 것 같다 작은 실금을 따라 잠이 들기도 하는 병의 집 문을 두드리는 몇 년이 문 밖의 일이라 여겼다지만 모든 병은 문 안에서 나가려는 소리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한다
꿈속 길은 길이 아니어서 며칠을 자도 허기진 잠은 늙은 붓기가 된다 서로가 똘똘 뭉쳐서 웅크리고 잠든 몸 그 누구도 혼자로는 몸에 남아 있지 않겠다는 듯 힘 가득 들어 있는 격렬한 몸이 꼭꼭 잠겨 있다
병을 지키고 앉아있는 잠깐의 졸음 그 틈으로 빠져나가는 병이 있었으면 좋겠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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