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수 시인 / 에덴의 저쪽
1
에덴은 있다. 에덴은 이태원에 있다. 에덴은 이태원 성광빌딩 2층에 있다. 1층에는 성광빌딩의 전월세를 관할하는 하느님의 권능을 지닌 태양부동산 사장님이 계시고 2층에는 그 분이 창업하신 에덴고시원이 있다. 남산과 한강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가진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명당 건너편에 에덴이 있고 그 지하에 지옥이 있다.
2
성경 밖의 이야기지만 지하의 독일산 최신 엠프 때문에 에덴 주민들과 트랜스젠더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곤 한다. 에덴과 지하에서 받는 월세 때문에 하느님과 동등한 권세를 가진 태양부동산 사장님도 지상과 지하의 싸움을 구경만 하고 있다. 지상과 지하 양쪽에서 월세를 받는 태양부동산 사장님의 권능으로도 해결하기 어렵다.
3
에덴주민들이 용산구청과 용산경찰서에 진정을 넣어보았지만 용산철거민들이 불에 타 죽은 이후로 자기들 소관이 아니라며 두 손 놓고 있다. 태초부터 시작된 선과 악의 싸움이 성광빌딩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이 이태원에 떨어질 거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에덴 주민들과 지하 2층 트랜스젠더들 사이의 분쟁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이 해결하게 되었다고 태양부동산 사장님이 혀를 찼다. 에덴주민들과 트랜스젠더들 어느 누구도 용산구청과 용산경찰서가 아닌 조선인민민주의공화국에 민원을 제기하지 않았지만 이태원에 대포동 미사일이 떨어질 거라고 했다. 믿음과 소망에 지친 에덴주민들과 트랜스젠더들이 차라리 잘 되었다고 했다.
4
에덴에 트랜스젠더가 잠입했다. 총무가 트랜스젠더와 여자를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 달 치 방값을 미리 지불했기 때문에 방을 물릴 수는 없다며 트랜스젠더와 여자를 어떻게 구별하느냐고 물었다가 태양부동산 사장님에게 면박 당했다. 날씬하고 예쁘고 상냥한 트랜스젠더였지만 에덴에서는 환영받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라고 불러야할 지 그녀라고 불러야할 지 난감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헤 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군 생활은 어디에서 했느냐고 물었다가 뺨을 맞을 뻔했다.
5
철쭉이 천천히 혀를 내밀고 있는 대낮에 그도 그녀도 아닌 213호가 봉투를 내밀었다. 그이면서 그녀인 그녀이면서 그인 213호의 창백한 봉투를 받아들고 213호의 긴 손가락을 보았다 남자의 성기를 닮은 가늘고 긴 손가락이었다. 대포동 미사일처럼 보였다. 아니 발사에 실패한 나로호처럼 보였다.
6
하느님의 권세를 가진 태양부동산 사장님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 에덴과 지옥을 주관하시는 태양부동산 사장님의 눈을 피해 총무가 월세를 가지고 도망쳤기 때문이다. 일찍이 뱀이 이브를 꼬였던 것처럼 총무는 그도 그녀도 아닌 213호와 함께 선악과보다 귀한 월세를 들고 도망갔다. 에덴의 선민들은 이 모든 게 하느님의 뜻이라고 했지만 태양부동산 사장님의 성서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7
에덴의 뒤뜰에 오동나무가 있다. 오동나무 잎은 성서에 나오는 무화과 잎사귀보다 크다. 무화과 잎은 이브의 치부를 가렸으나 오동나무 잎은 에덴주민들의 가난을 가려준다. 오동나무 잎이 가난을 가려준 덕분에 에덴주민들 사이에는 차이와 분별이 없다. 그래서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하지만 신들 사이에는 위계질서가 있다. 공자도 차이와 분별을 禮라고 하지 않았던가! 차이와 분별이 없는 사람들을 신은 용서하지 않는다. 차이와 분별이 없는 사람들은 예의가 없기 때문이다. 예의가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8
신과 같은 권세를 지닌 사람들은 예의 없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신들이 서로에 대해 예의를 차리듯 남산 아래 사는 재벌들은 재산의 양중에 따라 서로를 존중한다. 재산의 양중은 서열을 낳고 서열은 차별을 낳고 차별이 명품을 낳고 명품이 명문을 낳고 명문이 족보를 만드는데 명문가에는 가끔 족보에 없는 처자식이 드라마 주인공으로 나온다. 에덴 주민들은 주로 이런 막장드라마에 정신을 놓곤 한다.
9
에덴은 이태원에 있지만 이태원에서는 성광교회보다 이슬람사원이 더 유명하다. 에덴에 살면서 이슬람사원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누구도 그 이유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태원에 한국군인들 보다 미군들이 더 많이 돌아다니는 이유를 묻지 않는 것처럼 신성에 대한 호기심은 종종 재앙을 불러오기 쉽기 때문이다. 에덴은 이태원에 있고 이태원은 용산에 있다. 용산에 미 8군이 있고 미 8군은 서울이 아니라 머나 먼 캘리포니아에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맹신이 필요하다. 맹신의 힘은 헤로인보다 강하지만 맹신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에덴주민들은 두려움에 중독된 자들이다.
10
이 년 반 동안이나 두문불출하던 태양부동산 사장님이 요즘은 아무나 보고 두 손으로 하트를 만든다. 길을 가다 노인만 보면 목도리를 걸어주고 운다. 그걸 보고 그 양반 형님 친구가 따라 울더니 요즘은 새로 온 총무마저 아무나 껴안고 운다. 그런 게 신문이면 우리 집 화장지가 팔만대장경이라는 234호의 말처럼 할 말 못할 말 다하는 신문에서 그 양반이 먹는 순대와 오뎅을 대서특필했다. 오동나무 아래 저녁을 먹던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저 사람들 왜 저러냐고 묻는다. 러시아 아가씨들이 그걸 왜 우리에게 묻느냐고 역정을 낸다.
11 태양부동산 사장님이 중국에 가서 태극기를 거꾸로 쳐들고 응원을 했다. 그 전부터 골프 치러 747을 타고 외국을 드나들더니 돌아가신 아버지 영정을 보고 안중근씨라고 부르기도 하고 한밤중에 아침이슬을 부르기도 했다. 보광동 노점상들에게 인터넷으로 팔아라 조언도 하고 운전면허 시험에 떨어진 222호 젊은 친구에게 눈높이를 낮춰 지방으로 가라고 하고 공무원들은 서울에서 근무해야지 지방으로 가면 효율성이 떨어진다고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에덴주민들에게 이런 말씀을 날리셨다. 애들아 뻥튀기 사 먹어라!
12
에덴은 이태원에 있다. 에덴은 남산 건너 배수임산(背水臨山)의 흉지에 있다. 에덴은 용산구에 있지만 머나 먼 캘리포니아에 있고 이슬람 사원에 있지만 미 8군이 관할하는 영내에 있다. 그러나 에덴은 국경 너머에 있다. 에덴은 국적 너머에 있다. 에덴주민들 중 몇몇은 철거민이 되었지만 여전히 에덴 주민들은 에덴의 저쪽에 사는 신과 같은 분들이 날려 보내는 비둘기가 새파란 하늘을 양분하는 지상에서 산다.
계간 『시인시각』 2010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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