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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대철 시인 / 降雪의 아침에서 解氷의 저녁까지

by 파스칼바이런 2019. 4. 7.

신대철 시인 / 降雪의 아침에서 解氷의 저녁까지

 

 

하루는, 늘

흙속에서 흙속으로 출렁이는 약한 가교(架橋).

눈 가상이에 숨쉬는 세계의 높은 혈압을

탄탄한 의욕 펴 가벼이 납득하고서

불티마저 꺼진 관능의 온돌방을 빠져나올 때

우리의 안팎으로 섬교(纖巧)하게 이어지는

뜨겁기만한 잎사귀와 뿌리털.

오랜만의 초조한 외출길에도

메마른 폭설은 허기처럼 산발하여 내리고,

해일 위에 뜬 지구의 제 중심을 향해

우리는 가장 부지런한 자갈길을 걷는다.

안개 피어오르는 현대와 과거의

조금씩 부드러워진 여울목을 내려오르다가, 불현듯 우리는 흩어지고

겨울나무들이 최종의 잎새를 떨듯이

수심 깊은 뿌리털 속에서

나는 첨예한 눈을 뜬다.

허약자들이 죽어 쌓인 먼지와

모래알 껴 답답한 나목의 사회.

어딜까, 햇볕이 아직은 고여 있을 토양에 정착하고자

바람의 캄캄한 틈바귀마다

내 슬기로운 탐색을 비벼넣는다.

가벼운 압력조차 잘 느끼는 촉각을 뻗친다.

잎사귀와 뿌리털의 신비로운 기능을

번갈아 나눠하며

그후,

평범한 생활인이었던가를

귀 열어 가다듬은 이웃을 위해

내 의미대로의 대답을 준다.

시간의 옆에 물러앉아

흙 속으로 전화 거는 눈먼 노인이여,

우리는 똑같이 아름답고픈 현화식물(顯化植物)

추운 모랄의 하늘 밑에서는

항상 눈물 글썽여 이주하며 살아야 했지.

회의(懷疑) 밝히는 발자국의 길이를 더 좁혀

물결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군중의 황폐한 눈구석,

죽음의 골짜기를 간신히 건너뛰면

아아

어느새 실종의 오후.

밤새의 천히 성(城)이

외로운 그림자에 축축히 젖어 허물리는 것을

또, 알고 있지.

움직일 수 없는 것 중의 화려한 것이

마침내 쓰러진 귀가길에서

자기 안에 불 일궈 연소시켜도 소용없을 것을,

그러나 나는 끝까지

결빙의 내 밑바닥을 뚫어나간다.

신선한 근목이 보이잖게 찰찰 녹아 있을 수원지여,

그 지하수에 이르는 난항의 뱃길은

선조가 단 하나 던져중 은근한 끈기의

반접시 썰렁한 시간

잔뼈에 떠 있는 공복의 빙산을 위험하게 비켜나갈까,

나는 몇억을 살아야 도달할 수 있을까.

하루는, 늘

흙속에서 흙속으로 출렁이는 약한 가교.

기둥 밑은 피로한 이론의 흙탕물이 괴어 있어서

머리칼에 센 힘을 추켜세워

잔뜩 부둥켜안은 당신과 나의 허리를 나란히, 부러뜨린다.

내 중심을 떠받다는 신의 열 손가락을 한 마디씩 자른다. 잘려나간다.

생명의 돛이 제가끔 꺼져가는 동안

방종은 되살아

유리창 찬 살에 부딪는 별빛 나의 늦은 보행을 적시고,

비틀거리는 순간에 끼어드는 사상(死相)

우리의 가까이 총량은 조금씩 낮아진다.

주위는, 가까이로부터

허리는 시간의 높이와 발자국

지표 위의 온각 동작의 해체소리.

우리들의 허전한 내부와 외부

앙상한 오솔길을 물갈퀴로 내왕하던 것들은

전부, 쌀겨처럼 흩날린다.

흙속에서 씻겨나가 흩날릴 것이다.

이, 숨이 찰 듯한 나의 발언을 수송하다.

수심 깊은 속의 내력을 샅샅이 읽어왔을 바람이여,

오늘의 벼랑 끝에서 미아가 된 나는

스물세 살의 오늘의 질문을

네 힘대로 투척한다.

강설의 아침에서 해빙의 저녁까지

귀먹어가고 있을

세상의

밖에 살아있는 슬픈 내 연인에게……

 

196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신대철 시인

1945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 연세대 국문과와 同 대학원 졸업. 196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降雪의 아침에서 解氷의 저녁까지〉가 당선되어 시단에 데뷔. 시집으로 『무인도를 위하여』『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 』『자이칼 키스』가 있다. 제4회 백석문학상 수상. 현재 국민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