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길수 시인 / 철새의 기원
밥상에 오른 채소의 원산지는 국적 불문이다
고랭지 채소밭을 가꾸는 것은 이주 노동자들 양수기로 퍼 올린 물이 채소의 뿌리에 닿는 동안 노을은 보고 싶은 얼굴들을 나뭇가지에 그려주고 있다
우우, 어둠이 내리고 고국의 안부는 금세 흩어지고 국적이 다른 신발이 문지방마다 낯선 언어의 이명처럼 엎어져 있다
고국을 그리워하는 자세는 엎드린 체위, 시야결손에 걸린 듯 캄캄한 외면이다
채소는 밤에 크는 것 어둠 뒤에 제 모습 감추고 향수병을 파종한다 웃자란 생각만큼 고국은 멀어지고 타국의 서툰 언어를 끌어당겨 발목을 겨우 덮는다
한뎃잠을 자듯, 태초의 자세로 둥지를 틀며 기원이 되는 꿈을 꿀 것이다
모국어 한 조각 별빛에 걸린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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