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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봉윤숙 시인 / 시냇물에게 연차휴가를 주다

by 파스칼바이런 2019. 4. 8.

봉윤숙 시인 / 시냇물에게 연차휴가를 주다

 

 

        물은 만근중이다

        누가 그에게 붉은 돌을 풍덩 던져줄까

        365개의 계단을 통 통 통 건너다보면

        모든 하루가 예민하게 흔들리고 반복되며

        여러 빛깔의 물을 풀어놓는다

        봄이면 물가는 파릇파릇해지고

        다만 파란 것들은 반나절의 휴일 쯤 되려나

         

        늘 흘러가는 것에만 익숙한 탓에

        어딘가에 시선이 확 꽂혀 정박하고 싶지만

        건기의 슬픔은 바닥을 쩍쩍 갈라놓는 통증인 것을 안다

         

        물이 뒤집힐 때도 있다

        폭우가 쏟아지거나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되면

        당신이 땋은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서늘한 환호는

        해독하기 어렵다

         

        마야 달력은 어느 순간에 멈춰있다고 한다

        그러면 이 지루한 공전과 자전은 영원한 휴가에 들까

        오래된 달력의 궁금한 저녁

        아토피처럼 툭툭 불거져 나오는 물집들이

        잔업의 부유물처럼 둥둥 떠내려 오는

        찢겨져 나간 달력을 본다

         

        지금은 달력을 꼭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무도 시냇가에 와서 멱을 감거나 빨래를 하지 않는다

        넓어진 물길로 만근을 다 채운 물길이 느릿느릿 흘러간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월호 발표

 


 

봉윤숙 시인

2015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7년 시집 『꽃 앞의 계절』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