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윤숙 시인 / 시냇물에게 연차휴가를 주다
물은 만근중이다 누가 그에게 붉은 돌을 풍덩 던져줄까 365개의 계단을 통 통 통 건너다보면 모든 하루가 예민하게 흔들리고 반복되며 여러 빛깔의 물을 풀어놓는다 봄이면 물가는 파릇파릇해지고 다만 파란 것들은 반나절의 휴일 쯤 되려나
늘 흘러가는 것에만 익숙한 탓에 어딘가에 시선이 확 꽂혀 정박하고 싶지만 건기의 슬픔은 바닥을 쩍쩍 갈라놓는 통증인 것을 안다
물이 뒤집힐 때도 있다 폭우가 쏟아지거나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 되면 당신이 땋은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서늘한 환호는 해독하기 어렵다
마야 달력은 어느 순간에 멈춰있다고 한다 그러면 이 지루한 공전과 자전은 영원한 휴가에 들까 오래된 달력의 궁금한 저녁 아토피처럼 툭툭 불거져 나오는 물집들이 잔업의 부유물처럼 둥둥 떠내려 오는 찢겨져 나간 달력을 본다
지금은 달력을 꼭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무도 시냇가에 와서 멱을 감거나 빨래를 하지 않는다 넓어진 물길로 만근을 다 채운 물길이 느릿느릿 흘러간다
웹진 『시인광장』 2019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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