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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2주일 - 사람의 일과 하느님의 일

by 파스칼바이런 2020. 8. 31.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2주일 - 사람의 일과 하느님의 일

임상만 신부(서울대교구 상도동본당 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20.08.30 발행 [1578호]

 

 

▲ 임상만 신부

 

 

아시시의 프란시스코 성인에게 두 청년이 찾아와 입회를 청했다.그러자 프란치스코 성인이 말했다. “지금 내가 배추 모종을 심고 있는데 자네들도 같이 심어보게. 그런데 뿌리를 심지 말고 배추 잎을 땅에 심어야 하네.” 이 말을 들은한 청년은 시키는 대로 배추를 모두 거꾸로 심었다.그러나 다른 한 청년은“이 분은기도만 하고 농사는 안 지어 보았나 보네. 이렇게 배추를 거꾸로 심으면 다 썩어버리지…”하며 지혜롭게 배추를 바로 심었다. 이 모습을 본 성인은 거꾸로 심은 청년은 수도회에 받아들이고 바로 심은 청년은 돌려보냈다. 성인이 보고자 한 것은 이들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젊은이인가보다는 어떤 경우에도 전적으로 자기를 낮추어 순종할 수 있는가를 보려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면서 자기를 비운다는 것처럼 어려운 것은 없다. 대부분 사람은 항상 자기 생각이 먼저이다. 자기가 주장하는 것들이 당연히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기 생각이나 자기 방식이 아니면 어떤 것도 절대로 수용하지 못하여 불화를 일으키거나 심지어 공동체를 깨뜨리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고 하시며, 지금까지 살아온 자기 중심의 생활을 버리고 하느님 중심의 생활을 해야 한다고 이르시는 것이다.

 

얼마 전 은경축일을 맞은 후배 신부와 사목 활동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사제가 50세를 넘으면 아무리 확신이 있는 일이라도 우기지 않는 게 가장 큰 덕목”이라는 말을 해주었다. 물론 나이가 들면 모든 판단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수 있겠지만 자기가 확실하다고 여기는 그 무엇이라도 고집하기보다는 이것을 통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사목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교회에 필요한 사람은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보다 하느님의 일과 교회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신 이유가 ‘사람의 일’에 우선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도 대부분 베드로처럼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한다. 평생 그런 일을 학습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해야 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건강해야 하고, 노후 설계도 잘해야 성공한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이렇게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얻고 누리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인데 스스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죽으러 갈 것이라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 계획은 상식적으로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결코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의 길’을 택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가야 할 길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고 하느님의 일이라고 판단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일’을 하면 원하는 것들을 잃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꺼이 하느님께 의탁하는 순간 가진 모든것들이하느님께서주신선물이라는것을깨닫게 된다. 많은 것을 누리면서도 늘 부족했는데 그것들이 사라져도 감사하고 살아가는 참 행복을 알게 된다. 그동안 우리가 확신하며 고집했던 ‘사람의 일’ 방식을 내려놓으면 하느님께서성령으로 더 채워주시고 덤으로 영원한생명의 길을가르쳐주시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갈라 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