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셨다" 고백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21.03.28 발행 [1606호]
「채근담」에서는 사람이 지닌 기본적인 성향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굶주리면 달라붙고 배부르면 떠나가며 따뜻하면 몰려들고 추우면 버리는 것”. 언제나 한결같이 신의를 지킬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러기 어려운 약한 존재가 우리 인간입니다. 제 욕심에 사정없이 휘둘리고 소문에 흔들리는 ‘갈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믿음이라는 깊고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하겠지요.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두 가지 사건을 동시에 기념하는 오늘 전례에서는 예수님을 대하는 두 가지 마음이 대조적으로 나타나고 있지요.
먼저 입당 예식에서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군중들의 기쁨과 환희를 표현합니다. 그들은 손에 ‘승리’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겉옷을 벗어 길에 깔며 자기들에게 오시는 구세주를 열렬히 환영합니다. 그러는 마음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오신 구세주께서 강력한 카리스마와 놀라운 능력으로 자기들에게 ‘다윗 왕조’ 시절에 누렸던 것과 같은 영광과 번영을 가져다주시리라는 기대와 바람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은 주님을 향한 분노와 미움으로 무섭게 타오릅니다. ‘호산나’를 외치던 그들의 입에서는 이제 예수님에 대한 비난과 조롱,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 저 무능한 이를 어서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아우성이 터져 나옵니다. 예수님을 높여 부르던 ‘임금’이라는 호칭은 이제 그분이 저지른 ‘죄명’이 되어 십자가 위에 못 박힙니다.
우리는 이 상반된 두 가지 모습을 통해 주님을 환영하며 성지(聖枝)를 흔들던 우리가 욕심과 고집에 사로잡히면 언제든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성난 폭도가 될 수 있음을 되새깁니다. 또한 부족하고 약한 우리에게 세상의 유혹 앞에 흔들리지 않는 굳은 믿음을 주시기를 청합니다.
오늘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갖는 의미에 대해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같은 본성과 권능을 지니셨지만 그것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지 않으시고, 비천한 종의 모습으로,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과정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온전히 희생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었기에 당신의 뜻과 바람을 내세우지 않고 온전히 그분의 뜻에 순명하신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대의(大義)를 위해 투신(投身)하면, 그 숭고한 희생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나신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시게 된 것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위해 당신 자신을 온전히 투신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고통과 시련을 겪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기도 하지만, 하느님께 온전히 순종한 이들은 그분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부여받고, 하늘로 들어 높여져 그분과 함께 참된 행복을 영원토록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백인대장이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라고 고백한 것도 그런 깨달음에 이르렀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사람들은 ‘실패자’라고 손가락질하며 조롱하던 그분을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 고백이 진실된 것이 되려면,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신앙의 기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내 성공과 욕심을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분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나를 비우고 낮추어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그 배움의 과정에 충실히 임할수록 하느님과 함께하는 참된 행복을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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