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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유다

by 파스칼바이런 2021. 4. 1.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유다 (1)

함원식 이사야 신부(안계 본당 주임)

 

 

이번에 소개할 인물은 유다입니다.

 

성경에는 구약에 두 명, 신약에 두 명, 총 네 명의 유다가 등장하는데, 지금부터 살펴볼 유다는 첫 번째로 등장하는 인물로서 야곱과 레아 사이에서 태어난 네 번째 아들입니다. 다른 세 명의 유다는 마카베오 항쟁의 영웅 유다 마카베오,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 이스카리옷, 타대오라고도 불리는 예수님의 제자 유다입니다. 히브리어로 유다의 이름은 하느님을 찬양한다는 뜻입니다.

 

탄생 이후 유다가 처음 성경 이야기에 등장하는 때는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힌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 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유다는 형제들에게 요셉을 죽이지 말고 상인에게 노예로 팔아버리자는 제안을 합니다 (창세 37,26-27).

 

그런데 창세기 37,21-22에는 요셉을 살리려 노력하는 인물이 르우벤으로 나옵니다(창세 37,21-22). 이 차이는 엘로히스트와 야휘스트라는 두 개의 다른 전승이 한 데 섞였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즉, 기원전 930년 이스라엘이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의 유다 왕국으로 분열된 뒤, 북 왕국에서 생겨난 엘로히스트 전승은 그에 속한 지파 가운데 맏이인 르우벤을, 남 왕국에서 생겨난 야휘스트 전승은 자신들의 조상인 유다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어쨌든, 이 사실만으로 유다를 의인으로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 유다는 요셉을 온전히 지켜 주지 않습니다. 요셉이 어쩌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고통을 겪을지도 모르는 이방인 노예 생활을 하게 만들죠. 아마도 형제의 피를 손에 묻히는 끔찍한 죄는 짓고 싶지 않았지만, 요셉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른 형제들과 같았을 겁니다. 그리고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하여 크게 비통해하며 삶의 의욕까지 잃어버린 아버지에게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죠.

 

그런데 결국 동생을 노예로 팔아넘기고 돌아온 유다의 마음은 편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상심한 아버지 야곱을 볼 때마다 죄책감도 들었겠지요. 그래서인지 유다는 가문이 터 잡은 헤브론을 떠나 아둘람으로 갑니다.

 

창세기 38,1은 유다가 헤브론에서 아둘람으로 내려갔다고 하는데, 사실 아둘람은 헤브론의 북쪽에 있습니다. 물론 아둘람이 헤브론보다 지대가 낮은 곳에 있기에 내려간다는 말도 맞습니다만, 여기서 내려간다는 말은 불길함을 암시하는 동사로 해석합니다. 유다에게 불행한 일이 생길 것을 예고한다는 말이죠.

 

[2021년 3월 14일 사순 제4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유다 (2)

함원식 이사야 신부(안계 본당 주임)

 

 

유다는 아둘람에서 이방인과 결혼을 합니다.

 

창세기 38,2에는 그의 아내가 가나안 사람이었다고 나오는데, 이 표현은 가나안 땅의 토착민을 의미할 수도 있고, 상인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아내 수아의 이름은 부유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랍비들은 조상 유다가 이방인인 가나안 여인과 혼인했다고 보지 않고 동족 가운데 부유한 상인의 딸과 결혼했다고 해석합니다. 유다와 수아 사이에서 세 아들이 태어나는데, 에르, 오난, 셀라입니다.

 

그런데 타마르를 며느리로 맞이하면서 누구보다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을 원했을 유다의 바람이 깨지기 시작합니다. 타마르가 불행을 몰고 온 것이 아니라, 타마르로 인해 유다 가정의 실체가 드러난다고 보아야겠습니다. 사실 타마르는 가해자가 아니라, 매우 불행한 운명을 겪은 피해자입니다. 당시의 관습대로 타마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유다의 맏아들 에르에게 시집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르는 악했습니다(창세기 38,7). 그의 악행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어찌나 악했으면 그 이름조차도 악을 뜻하는 히브리어 ‘라아’를 뒤집어 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악한 남자의 아내가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결국 에르는 자신의 악함 때문에 하느님의 분노를 사 자식을 남기지 못한 채 죽고 맙니다.

 

그러자 유다는 타마르를 둘째 아들 오난과 재혼시킵니다. 이것이 매우 해괴망측하게 보이겠지만, 신명기 25장은 수혼법(嫂婚法)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이 함께 살다가 그 가운데 하나가 아들 없이 죽었을 경우, 죽은 그 사람의 아내는 다른 집안 남자의 아내가 될 수 없다. 남편의 형제가 가서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시숙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여자가 낳은 첫아들은 죽은 형제의 이름을 이어받아, 그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지워지지 않게 해야 한다.”(신명 25,5-6)

 

[2021년 3월 21일 사순 제5주일 가톨릭안동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