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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말씀묵상] 십자 나무의 열매를 맺는 사람

by 파스칼바이런 2021. 9. 12.

[말씀묵상] 십자 나무의 열매를 맺는 사람

연중 제24주일

제1독서 (이사 50,5-9ㄴ)/제2독서 (야고 2,14-18)/복음 (마르 8,27-35)

가톨릭신문 2021-09-12 [제3261호, 15면]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러 오신 분

우리 모두 충실한 주님의 제자로 십자가 지고 희생하는 삶 살아가야

세상 모든 고통과 갈등 속에서도 은총의 씨앗은 참사랑의 열매 맺어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앞둔 연중 제24주일입니다. “Follow me(나를 따르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 중에 삶의 의미를 찾던 기억이 납니다. 주님의 충실한 제자로 신앙에 뿌리를 내린 십자 나무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인 줄 압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전하는 ‘주님의 종’의 노래(제1독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주님께서 귀를 열어주시니 종은 거역하지 않고, 물러서지도 않으며, 모욕과 매질을 당하는데도 얼굴을 가리지 않습니다. 수치를 당하는 일도 아니고, 주님께서 도와주심을 알기에 얼굴은 차돌 같습니다.

 

주님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대적하고 단죄합니까? ‘주님의 종’의 모습은 충실한 제자 같습니다.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내리신 사명을 거부하지 않고 자진해서 순종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종의 말에 순종하는 자”(이사 50,10)입니까?

 

사랑이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주님과 함께 생명의 길을 걸어갑니다. 자비하신 주님은 가난하고 비천한 이들을 돌보시고, 삶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에서 구해주십니다. 우리의 애원을 들어주시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화답송)

 

믿음은 무한한 가치를 지닌 자유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제2독서).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 가난한 사람에게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야고 2,16)

 

진리와 사랑의 근원이신 주님을 믿고, 구원의 희망 속에 삶의 고통을 인내합니다. 주님의 은총과 성령의 친교가 함께하는 가운데 완덕의 길을 걷습니다. 가장 작은 이들에 대한 나눔과 돌봄(마태 25,35-40; 루카 11,41)이 사랑의 표현입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이방인 지역의 가장자리인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시는 길에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물으십니다. 그들의 대답은 요한 세례자, 엘리야, 예언자로 모두 예언자적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마르코 복음의 시작(마르 1,1)입니다. 대중의 여론은 예언자이고, 제자들은 스승을 메시아로 믿습니다. 메시아의 사명에 대한 인간적인 생각에 혼란을 피하고자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원에 관하여 침묵을 지키라고 엄히 당부하십니다.

 

 

주님께서 친히 ‘사람의 아들’이란 불가사의한 호칭을 사용하십니다. 다니엘 예언자가 본 ‘사람의 아들’(다니 7,13)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십니다. 성령이 충만한 스테파노가 순교 직전 본 ‘사람의 아들’(사도 7,55)은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십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성자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분”(마르 10,45)이십니다. 유한한 시간과 공간의 역사적 조건 안에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기 위해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신 성자께서 존재의 의미를 겸손히 밝히십니다.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세 번 예고하시는 가운데 오늘은 첫 번째입니다.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주님을 배척하는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은 대사제가 의장인 ‘산헤드린’(Sanhedrin, 71명의 의회)의 구성원들입니다. 메시아의 사명에 수난과 죽음은 배제하려는 베드로는 예수님을 꽉 잡고 반박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에 걸림돌이 되는 베드로의 말에 호통을 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33)사탄은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가로막고자 거짓으로 유혹하는 악마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 주님께서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하신 당부의 말씀입니다. 자신을 버림(자기부정)은 충실한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가진 모든 것과 가족들과의 인연을 끊는 일입니다. 십자가는 무거운 짐을 지고 견디는 희생(죽음 포함)적 삶의 은유적 표현입니다.

 

골고타 언덕에 들어 올려진 십자 나무에서 구원의 생명이 솟아납니다. 무거운 통나무에 못 박히신 지극한 사랑의 주님께서 큰소리로 외치신 마지막 말씀을 되새겨봅니다. 우리를 위하여 원수를 용서하는 회심, 영원한 생명에 대한 목마름, 성모님에 대한 공경, 사도직 사명의 완수, 천주 성부께 의탁하신 마음의 기도입니다.

 

십자가로 세상을 구원하신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인간다운 생활 양식을 위해 저희는 세상의 온갖 고통과 갈등 속에서도 주님을 따르는 불림을 받은 십자 나무입니다. 나무의 됨됨이는 열매를 보고 압니다.(마태 7,17) 주님 은총의 씨앗이 자란 십자 나무에 강인한 생명력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참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십자 나무가 숲을 이루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사랑의 일치를 이루게 하소서. 아멘.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