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내 곁의 반려자는 또 다른 하느님… 내 영혼 구원하시네 연중 제27주일 제1독서(창세 2,18-24) 제2독서(히브 2,9-11) 복음(마르 10,2-16) 가톨릭신문 2021-10-03 [제3263호, 15면]
결혼으로 맺은 남녀 인연으로 새로운 인생 여정이 시작되는 것 배우자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알아야 오늘날 숱한 이유로 이혼 늘면서 사회적인 문제 심각한 현실 부부는 한몸, 하느님이 맺어 주신 인연 임의로 깨뜨리면 안 돼 혼인은 하느님 안에서 이뤄진 거룩한 계약임을 절대 잊지 말길
■ 혼인, 또 다른 하나의 우주를 만나는 일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를 연구하던 한 학자가 기막힌 내용의 글귀를 발견했답니다. “요즘 아이들, 정말 버릇도 없고 문제가 심각하다.” 참 재미있습니다. ‘청소년 문제’, 오늘 우리 시대만 심각한 것인 줄 알았는데, 이미 수천 년 전 어른들도 머리 싸매고 고민했던 문제가 청소년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혼문제도 마찬가지임을 오늘 복음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가 쓰인 후 벌써 200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요즘 우리 시대만 이혼문제가 심각한 줄 알았는데, 예수님 시대 당시뿐만 아니라, 더 거슬러 올라가서 모세 시대 역시 이혼문제는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완화시키고, 이혼을 합리화시키려는 경향이 모세 시대뿐만 아니라 예수님 시대에도 만연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모세가 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해줬는데, 그렇다면 살다가 마음에 안 들면 이혼해도 큰 문제없지 않겠느냐?’고 예수님께 따집니다.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데, 괜히 모세가 앞장서서 이혼을 허락했겠습니까? 또 별 이유도 아닌데 이혼을 허락했겠습니까? 사람들이 당시 백성들의 지도자였던 모세에게 갖은 협박을 가하고 괴롭히니, 할 수 없이 특별한 케이스에 한해서 선별적으로 허락을 해준 것을 가지고 바리사이들은 이토록 물고 늘어진 것입니다.
이혼하는 부부들, 그들 나름대로의 사정을 들어보면 참으로 ‘기막힌’ 케이스들이 많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헤어지는 것이 서로가 사는 길인 부부도 있습니다. 속아서 결혼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혼 사유로 ‘성격 차이’를 내세우는 분들도 있는데, 이것만큼은 재고되어야 합니다. 30년 40년 서로 다른 가정환경, 문화, 분위기, 가족관계 안에서 살아오던 두 사람이 결혼을 통해서 한배를 타게 됩니다. ‘성격 차이’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성격이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결혼은 어쩌면 또 다른 하나의 세상을 만나는 것입니다. 결혼은 어쩌면 또 다른 하나의 우주를 만나는 것입니다. 결혼은 어쩌면 스승 한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결혼을 통해 부부는 긴 항해를 시작합니다. 결혼을 통해 부부는 공부를 시작합니다. 어쩌면 배우자는 새 하늘 새 땅입니다. 갖은 다양한 탐구거리로 가득 찬 새로운 대양이 배우자입니다.
결혼생활을 영위하시는 분들, 상대방을 내 소유물로 설정하지 마십시오. 상대방을 내 성취의 도구로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상대방을 내 욕구충족의 대상으로도 여기지 마십시오. 그는 멀고먼 은하계에서 오직 나만을 찾아 정확하게 내 안에 떨어진 하나의 별입니다. 그는 나의 성장을 위해, 나의 구원을 위해 다가오신 또 다른 하느님입니다.
슬픈 일이지만 결혼은 현실입니다. 사람은 이슬만 먹고 살지 않습니다. 결혼은 사랑에 밥 말아서 먹고 사는 것일 거라는 환상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입니다. 결혼은 때로 쓰디쓴 현실입니다. 길고 험난한 자신과의 투쟁입니다. 결혼은 수도생활 못지않은 오랜 자기 수련과 고행의 길입니다.
■ 혼인은 성사(聖事)입니다
오늘 바리사이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확대해석해서 너무나도 당연히 이혼장 운운하고 있는 것입니다. 완고하고 독선적이며 아전인수의 대가인 바리사이들 앞에 예수님은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지 않으십니다. 아주 강경하게 결혼과 관련된 불변의 원칙을 재천명하십니다.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코 복음 10장 8~9절)
예수님 시대 당시 ‘이혼장’이 악용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습관은 신명기 24장 1-4절에 근거한 것이지요. 거기 제시된 율법에 따르면 아내에게 무엇인가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한 남편은 그 여인을 쫓아내기 전에 이혼장을 써야만 했습니다. 이 이혼장을 손에 쥔 여인은 전 남편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혼장은 또한 재혼을 위해 필요한 서류였습니다.
모세는 너무도 문란한 결혼생활, 또 그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이혼장을 사용할 것을 당부했지만, 유다인들은 이 관습을 남용했습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은 아내와 이혼할 수 있다는 자신들의 이 관습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혼장은 점점 더 남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에게 수치스런 일’이란 원래 아내의 불륜만을 지칭했지만, 후에는 그에 대한 적용이 더 확대됐습니다.
결혼 후 10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는 아내, 남편과 말다툼 하는 아내, 친척 앞에서 불손한 태도를 취하는 아내, 베일을 쓰지 않고 외출한 아내, 다른 남자와 말을 하는 아내, 고기를 지나치게 바싹 구운 아내, 국을 끓였는데 간을 제대로 못 맞춘 아내, 가정사를 남에게 퍼트린 아내 등, 별의 별 이유를 들어 아내를 내쫓게 되었습니다.
이혼장은 유다 백성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유다인들의 고집 센 기질, 굳어진 마음, 문란한 생활, 끝도 없는 타락 때문에 겨우 예외를 허락해 준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입법자로서의 모세는 당연히 이혼을 금하는 법령을 제정하고 일관되게 밀고 나갔어야 했는데, 히브리 민족의 윤리적 타락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구체적인 현실을 돌아봅니다. 숱한 이혼들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심각합니다. 물론 도저히 감당하지 못할 결혼생활보다는 이혼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도 예외적인 규정을 정해 이혼한 사람들을 구제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억할 것은 혼인은 성사(聖事)라는 점입니다. 하느님 안에 이루어진 거룩한 계약입니다. 이혼 앞에서 더욱 심사숙고를 거듭해야 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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