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 유다 (창세 37; 38; 44,18-34; 49,8-12) 강수원 베드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유다(히브리어 ‘예후다’)라는 이름은 ‘(주님을) 찬송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요, 성경에선 예수님의 두 제자들(‘타대오’라고도 불리는 유다, 유다 이스카리옷) 같은 개인뿐 아니라, 민족(유다인)이나 나라 전체(남왕국 유다, 기원전 933-587년)를 지칭하는 중요한 이름입니다. 물론 이 이름은 야곱의 열두 아들들 중 넷째인 유다에게서 비롯된 것이지요. 마태오 복음사가는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마태 1,2)라며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이 야곱을 거쳐 맏이 르우벤이 아닌 넷째 유다를 통해 이어졌음을 증언하는데요, 과연 유다는 야곱이 죽기 전에 베푼 축복에서 위엄 있는 사자에 비유되며 왕홀과 지휘봉을 가진 영광스러운 임금의 형상으로 예언된 바 있습니다(창세 49,8-12). 하느님의 축복이 맏아들을 통해 전해진다고 믿었던 고대 사회에서, 맏아들이 아닌 넷째 유다가 이런 넘치는 축복을 받은 것은 예삿일이 아닙니다.
야곱과 레아 사이에서 난 유다는 비록 넷째 아들이지만, 아버지의 소실 빌하를 범하여 눈 밖에 난 맏형 르우벤(창세 35,22)이나 속임수와 폭력으로 스켐인들을 살육하여 아버지를 불행에 빠뜨린 둘째와 셋째 형 시메온과 레위(34,25-31)를 대신하여, 아버지 야곱의 신뢰 속에 진작부터 맏아들과 같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창세기의 거대한 요셉 이야기(37; 39-50장)는 온통 죄수에서 일약 이집트 재상이 된 요셉만의 영웅담 같지만, 사실 야곱 가문의 불화와 재화합의 역사 속 또 하나의 주인공은 분명 유다였지요. 질투에 눈먼 형제들이 동생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죽게 하려던 때에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자. 그래도 그 아이는 우리 아우고 우리 살붙이가 아니냐?” 하며 요셉을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아넘기게 하여 그의 목숨을 구한 이후로(37,26-27), 유다는 다른 형제들과는 사뭇 다르게 가족의 생명과 일치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줍니다. 기근 속에 온 가문이 굶주리게 되었는데도 야곱이 막내 벤야민만은 내어주지 못하겠다 버틸 때에 그를 설득한 아들도 유다였는데, 이때 야곱이 맏이 르우벤의 제안은 거절하면서도(42,37-38) 유다의 간청만은 받아들였던 일화는 유명하지요(43,8-14). 또 요셉 앞에서, 자신들이 겪는 시련이 형제를 팔아넘긴 죄 탓이며 하느님의 정의로운 판결이라 인정하고 고백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 이도 다름 아닌 유다였습니다(44,16). 마침내 유다가 막내 벤야민을 위해 대신 볼모가 되겠다며 목숨을 걸고 자신을 희생하려 했을 때(44,18-34) 형제들의 배신으로 차갑게 얼어붙었던 요셉의 마음은 눈처럼 녹아내렸고, 훼손되었던 성조 야곱 가문의 일치와 평화가 오롯이 회복되어 구세사 속에 다시 올바로 정초하게 되었지요(45,1-15).
자식을 잃은 아버지 야곱의 마음을 깊이 헤아릴 줄 알았던 유일한 아들로서(창세 43,9; 44,30-34) 아버지가 사랑하는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유다의 모습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인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참으로 닮았지요. 예수님에 앞서 대속과 자기희생의 위대한 의미를 알려준 유다야말로 예수님의 참 조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희생은커녕 누군가가 내게 낸 작은 생채기에도 견디기 힘든 요즘입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 혹여 갈라지고 무너진 관계나 누군가의 잘못으로 벌어진 상처는 없는지 잘 살피고, 내 작은 희생으로 가족과 이웃에게 일치와 화합을 가져오는 또 하나의 유다로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2021년 9월 19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이동 대구주보 3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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