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8주일 - 내려놓아야 채워집니다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가톨릭평화신문 2021.10.10 발행 [1632호]
불교 용어 중에 ‘방하착(放下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뜻으로, 우리를 괴롭게 만드는 재물, 명예, 성공, 관계에 대한 욕심을 홀가분하게 벗어 던져버리라는 의미입니다. 당나라의 선승 조주 스님이 깨달음을 얻고자 자신을 찾아온 중생들에게 이것을 강조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들이 더 이상 내려놓을 게 없이 탈탈 털어버리고 나면 그제서야 ‘착득거(着得去)’ 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는 ‘지고 가라’는 뜻으로, 모든 욕심과 집착을 온전히 내려놓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얻게 된 그 깨달음과 편안함을 마음에 지니고 가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가르침이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과 맞닿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 묻습니다.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평생 무엇을 ‘얻을 생각’만 하며 살아온 그가, 그래서 많은 재산을 모으는 데 성공한 그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든 것입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많고 복잡한 율법 조항들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기본이고, 달콤한 칭찬으로 상대방의 비위를 맞춰주는 일도 마다치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는 갈망이 컸던 것이지요. 예수님은 그의 순수한 갈망을 어여삐 보십니다. 당신을 따르는 ‘제자’라는 자들은 더 풍족하고 부유한 삶을 누리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스승님이 하시는 말씀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상황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은 간절함으로 당신을 찾아온 모습이 ‘사랑스럽게’ 보인 것이지요. 그러나 그 갈망을 이루는 방법은 올바르게 이끌어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죄를 저지르지 않는 수준에 머물렀을 뿐, 다른 사람에게 선을 베풀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과 자비의 실천’이라는 소명에 충실히 응답하지 않는다면, 그 밖의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봐야 ‘하느님 나라’에는 가지 못할 것이고, 그러면 그가 원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게 되겠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나눔과 자선으로 그가 부족한 한 가지를 채울 절호의 기회를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께서 주신 그 소중한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차 버립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는 마음보다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손에 지니고 있는 그 쓸데없는 것들을 내려놓아야만, 더 귀한 선물들을 받을 수 있음을 알면서도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것들을 스스로 포기해버린 것입니다. 뒤늦게 후회해봐야 한 번 지나쳐간 기회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 이유는 세상 것들에 욕심내고 집착하여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비대해진 상태로는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참된 행복과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한다면 먼저 지금 내 손에 움켜쥐고 있는 것들을 과감하게 내려놓는 결단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냥 내려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백배로’ 받을 상급을 생각하며 더 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지금 가진 것을 잠시 내려놓는 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 즉 나의 말과 행동으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서 기꺼이 내려놓고 나눠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나의 삶을 모자람 없이 충만하게 채우실 것입니다. 아홉을 가지면 열을 채워야 충만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족한 인간의 사고방식입니다. 전능하신 하느님은 당신을 위해 그 아홉을 전부 내려놓는 이를 백 배, 천 배 더 큰 은총으로 채우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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