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뭐라꼬예?] 모세의 간절한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사무처장)
주님의 편에 서지 않은 대가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각자 허리에 칼을 차고, 진영의 이 대문에서 저 대문으로 오가면서, 저마다 자기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죽여라.’”(탈출 32,27) 다신교들이 섬기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을) 숭배하는 잘못을 범하였지만, 모세의 분부에 따라 ‘주님의 편에 섰던’ 사람들은 살아남았고, ‘주님의 편에 서지 않았던’ 사람들은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대략 삼천 명 정도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주님의 편에 섰던’ 레위의 자손들의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렇게 죽은 사람들은 바로 레위인들의 형제, 친구, 이웃이었습니다. 레위인들과 가까운 사람들이었지만 주님의 편에 서지 않았었던 것이지요.
그러면 레위인들은 금송아지를 섬기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레위인들이 주님의 편에 섰다는 것은 가족의 속박에서 벗어나 있었던 레위인들의 특징을 암시한다고 봅니다. 즉 레위인들이 사제직에 임명된 것은 단순히 그들이 레위가문에 속해서가 아니라, 자기 아들들이나 형제들을 특별히 고려하거나 혈족을 특별히 돌보지 않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실제 레위인이 아니면서도 사제로 임명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조 야곱이 열두 아들을 축복하였듯이 모세가 각 지파의 앞날을 예고한 장엄한 맹세와 기도, 여기에 이에 대한 힌트가 있습니다. 모세가 레위를 두고서는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두고 ‘나는 그를 본 적이 없다.’ 하며 자기 형제를 외면하고 자기 아들들을 아는 체하지 않았습니다. 정녕 그는 당신의 말씀을 지키고 당신의 계약을 준수하였습니다.”(신명 33,9)
주님의 편에 선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고, 설사 잘못을 범하더라도 주님을 등지지 않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시는 주님의 곁을 떠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주님의 곁에 머무를 은총을 구합시다!
모세의 중재와 하느님의 징벌 예고
다음날 모세는 주님께 나아가 혹시 백성이 지은 큰 죄를 갚을 수 있을까 여쭈었습니다. “아, 이 백성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들을 위하여 금으로 신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으려거든, 당신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제발 저를 지워 주십시오.”(탈출 32, 31-32) 여기서 말하는 ‘책’은 인구 조사 때에 만들어진 명부를 뜻하는 것으로서, 이 명부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것은 더 이상 백성에 들지 않고 제외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느님께서도 이처럼 살아있는 자들의 목록을 가지고 계셔서, 죽어야 할 자는 그때마다 그 목록에서 삭제하여 버린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를 담아 시편 69,28은 소위 ‘생명의 책’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들이(제 원수들이) 생명의 책에서 지워지고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않게 하소서.”
모세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시지 않으시려거든 자신의 죄도 물어달라 간청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요청에 하느님께서는 죄 없는 모세에게 백성들을 이끌어 갈 사명을 계속 맡길 것이지만, 백성의 잘못에 대한 징벌의 날은 따로 있을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나에게 죄지은 자만 내 책에서 지운다. 이제 너는 가서 내가 너에게 일러 준 곳으로 백성을 이끌어라. 보아라, 내 천사가 네 앞에 서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내 징벌의 날에 나는 그들의 죄를 징벌하겠다.”(탈출 32,33-34) 탈출기는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범한 제의적 타락이 지금 당장 처벌되지는 않을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처벌되고 말 것임을 강조하며 다음 구절을 덧붙입니다. “그 뒤 주님께서는 백성이 수송아지를 만든 일 때문에, 곧 아론이 만든 수송아지 때문에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셨다.”(탈출 32,35)
“그러나 내 징벌의 날에 나는 그들의 죄를 징벌하겠다.”[탈출 32,34]는 하느님의 말씀을 나에 대한 경고의 말씀으로 가슴에 새겨보면 어떨까요? 내 자신이 범한 잘못에 대해서도 하느님께서는 같은 말씀을 하실 것 같지 않나요?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그 죄를 기워 갚게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회개와 보속의 삶을 성실히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죄지은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요구
“너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거라.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 너희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므로, 도중에 내가 너희를 없애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탈출, 33,3) 여기서 백성의 ‘목이 뻣뻣하다’고 하는 말은 그들이 제멋대로 금송아지를 숭배하여 타락하였던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발을 명령하시지만, 그 백성이 길을 가다 또 당신을 배신하고 우상숭배의 잘못을 짓게 될 것이 자명하니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다시 잘못을 범하는 백성을 없애 버릴 염려가 있으니 차라리 가지 않는 게 낫겠다고 하신 것이지요. 참 서글픈 말씀이면서도 감격스러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신 백성이 또 잘못된 길로 들어설 것임을 잘 알고 계신다는 말씀이고, 당신이 화를 참지 못하여 백성을 다치게 할 위험이 있으니 떨어져 있으시겠다는 말씀 아닙니까!
“백성은 이렇듯 참담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패물을 몸에 다는 사람이 없었다.”(탈출 33,4) 이 구절은 다음 구절과 함께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너희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내가 한순간이라도 너희와 함께 올라가다가는, 너희를 없애 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이제 너희는 패물을 몸에서 떼어 내어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어떻게 할지 결정하겠다.”(탈출 33,5) 이 두 구절을 종합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서 패물을 몸에서 떼어낼 것을 명하시자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또 자신들과 동행하지 않겠다고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슬퍼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장식품을 달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금 금송아지를 만들도록 그들의 마음을 흔들어댈 수 있을 만큼 위험할 수 있는 패물을 몸에서 떼어 내라 하신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진정으로 또 지속적인 회개를 한다는 의미로 패물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모세의 간단없는 기도와 하느님의 응답
모세는 다시 하느님께 간청하며 백성을 위해 계속 기도를 올립니다. “보십시오, 당신께서는 저에게 ‘이 백성을 데리고 올라가거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러니 이제 제가 당신 눈에 든다면, 저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당신을 알고, 더욱 당신 눈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민족이 당신 백성이라는 것도 생각해 주십시오.”(탈출 33,12-13) 모세의 관심은 먼저 자신이 하느님의 눈에 드는 것이고, 다음 그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길’, 그 길을 따라가는 일이 참으로 중요했습니다. 그 길을 따라가야만 백성을 이끌어가는 자신의 소명을 다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몸소 함께 가면서 너에게 안식을 베풀겠다.”(탈출 33,14) 하느님께서 이토록 감격스러운 말씀을 해 주셨음에도 모세는 또 간청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확실히 함께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분명하게 듣고 싶었던 것이지요. “이제 저와 당신 백성이 당신 눈에 들었는지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저희와 함께 가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야만 저와 당신 백성이 땅위에 있는 다른 모든 주민과 구분되는 것이 아닙니까?”(탈출 33,16) 이에 하느님께서는 “네가 청한 이 일도 내가 해 주겠다. 네가 내 눈에 들고, 나는 너를 이름까지도 잘 알기 때문이다.”(탈출 33,17) 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눈에 들었습니다. 자신과 백성을 위한 모세의 간단없는 기도에 그를 어여삐 보신 하느님께서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이러한 모세를 보며 백성을 위한 중개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설령 백성들이 부족함이 있더라도 지도자가 하느님의 눈에 든다면, 그 백성들은 구원의 길을 더 잘 걷게 된다는 것이지요. 모자라는 백성일수록 더 현명하고 자기관리에 더 철저한 지도자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한 지도자를 보내 주십사 기도할 필요도 못 느낄 만큼 우둔한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10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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