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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아레오파고스 설교가 돋보이는 아테네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22.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아레오파고스 설교가 돋보이는 아테네

이창훈 알퐁소(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베로이아에서 아테네로 내려온 바오로는 실라스와 티모테오를 기다리면서 먼저 유다인 회당을 찾았을 것입니다. 어느 도시에 들어가든지 먼저 유다인 회당을 찾아가는 것은 선교 여행에서 바오로가 택한 선교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아테네 시내를 둘러봤을 것입니다. 당시 아테네는 로마 제국에 복속돼 정치적 영향력은 없었지만, 찬란한 그리스 문명의 중심 도시답게 여전히 국제적인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리스 신화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 문화는 한편으로는 신들의 세계와 밀접히 관련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테네에는 신들을 모시는 다양한 신전과 신상이 있었습니다. 바오로의 눈에는 그것들을 보고 격분합니다.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위배한다고 본 것입니다(사도 17,16).

 

 

날마다 토론하는 바오로

 

바오로는 회당에서 유다인들과 하느님을 섬기는 이들, 곧 유다교로 개종한 그리스인들과 토론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날마다 광장으로 나가서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도 토론을 벌였습니다(사도 17,17). 그리스 말로 ‘아고라’라고 하는 광장은 시장이 들어서고 법정이 열리는 곳으로 공무를 집행할 뿐 아니라 대화하고 토론하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바오로와 토론한 사람들 가운데는 당시에 널리 퍼져 있던 철학 사조인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육체적 고통이 없고 마음에 불안이 없는 상태(아타락시아)를 통해서 행복을 추구하려는 학파였고, 스토아학파는 이성(理性)을 중시하면서 정념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 상태(아파테이아)를 통해서 행복을 추구하려는 학파였습니다. 이들에게는 예수님과 부활에 관한 바오로의 말이 생소했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저 떠버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하고 빈정거렸고, 또 어떤 이들은 “이방 신들을 선전하는 사람 같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사도 17,18). 부활은 그리스말로 ‘아나스타시스’라고 하는데 여성 명사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오로가 예수라는 신과 아나스타시스라는 여신을 선전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아레오파고스에서 설교하다

 

아테네 사람과 그곳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도 뭔가 새로운 것을 이야기하고 듣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오로를 아레오파고스로 데리고 가서 그가 말하는 새로운 가르침을 좀 더 자세히 듣고자 했습니다(사도 17,19-21). 광장 위쪽에 있는 아레오파고스는 ‘아레스의 언덕’이라는 뜻인데, 아레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을 가리킵니다. 아레오파고스는 원래 아테네의 정치와 사법을 관장하는 최고 의회가 열리는 곳이었습니다.

 

바오로는 광장 위쪽으로 우뚝 솟은 아레오파고스에 서서 아테네 시민들을 향해 설교합니다. 바오로의 설교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먼저 아테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치는 제단을 둘 만큼 큰 종교심을 갖고 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알지 못하는 신을 자신이 선포하는 하느님과 결부시킵니다(사도 17, 22-23).

 

 

2) 이어서 하느님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분은 ① 만물의 창조주로서 사람이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으시며 ② 부족함이 없으시기에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 않으시며 오히려 모든 이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며 ③ 한 사람에게서 온 인류를 만들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 절기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사도 17,24-26).

 

3) 인간은 자연 질서와 피조물을 통해 하느님을 알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합니다. ①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게 하려는 것인데,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을 수도 있으며 ② 그분은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고 ③ 모두가 그분 안에서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동향인 킬리키아 출신으로 기원전 3세기 스토아학파 시인 아라토스가 한 ‘우리도 그분의 자녀다’라는 말을 인용합니다(사도 17,27-28).

 

4) 이제 하느님 앞에서 인간이 취해야 할 태도 곧 회개를 이야기합니다. ①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인간의 예술이나 상상으로 빚어 만든 상들을 신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되며 ② 하느님께서는 무지의 시대에는 그냥 보아 넘기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든지 모두가 회개해야 한다고 명령하셨다는 것입니다(사도 17,29-30).

 

5) 마지막으로 왜 지금이 회개의 때인지를 설명합니다. ①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정하신 한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롭게 심판하실 날을 지정하셨고 ②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어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증명해 주셨다는 것입니다(사도 17,31).

 

아레오파고스 설교의 의미와 결과

 

바오로의 아레오파고스 설교는 복음을 전하는 방식과 관련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바오로는 그리스인들에게는 낯선 이스라엘의 역사나 예언자들의 예언은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복음 메시지의 핵심을 아테네 사람들에게 적합하게 그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에 비춰 설파한 것입니다. 훨씬 후대인 16~17세기에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 선교를 위해 중국 사상의 기반이 되는 유교의 부족한 점을 보완한다는 취지로 채택한 보유론(補儒論)의 방식이 아레오파고스 설교와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한 말이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리스 사상에서 영혼 불멸의 개념은 있지만, 육신의 부활이란 개념은 아주 생소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의 말을 듣고 어떤 이들은 얼토당토않은 말을 한다고 비웃습니다. 다음에 다시 듣겠다면서 관심을 보인 이들도 있었지만, 바오로의 설교를 받아들여 믿게 된 이는 몇몇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말하자면 바오로의 아레오파고스 설교는 그다지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레오파고스 의회 의원인 디오니시오와 다마리스라는 여자를 비롯한 몇 사람이 바오로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사도 17,32-34). 디오니시오는 아테네의 초대 주교라는 전승이 전해져 옵니다.

 

오늘날 아테네는 찬란한 고대 그리스 문명의 자취를 둘러보려고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세계적 관광 명소입니다. 그리스도교 순례자들은 나아가 이 도시에서 바오로가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사람들과 토론했던 광장과 아테네 시민들에게 설교한 아레오파고스 언덕을 걸으며 당시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 오른쪽에는 바오로의 아레오파고스 설교 내용(사도 17,22-31)을 그리스어로 적은 청동판이 있어 이곳이 성경의 세계에 나오는 그 현장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에 서서 아크로폴리스에 우뚝 솟은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고대 그리스의 신전 유적들을 바라보면서 2000년 전 바오로 사도가 설파한 그 대목을 소리 내어 읽으며 시대의 변천 속에서도 변치 않으시는 그분을 찬미할 그 날을 고대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