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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관련>/◆ 성 경 관 련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코라진 회당과 모세의 자리

by 파스칼바이런 2021. 11. 3.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코라진 회당과 모세의 자리

김명숙 소피아 박사

 

 

 

 

이스라엘 성지는 성경의 가르침을 생생하게 깨닫고 따르고자 하는 이들에게 보석 같은 곳입니다. 어떤 이는 이스라엘 성지를 두고 다섯 번째 복음이라 칭하지요. 코로나 19가 지구촌을 강타해 순례 길은 막혔지만 글쓴이는 마음으로나마 성지로 가서 그곳에서 전달된 신·구약의 말씀들을 하나씩 안내해보려 합니다. 첫 순례지는, 예수님이 공생애의 중심지로 삼으신 갈릴래아 호수의 코라진입니다.

 

코라진은 주님께서 활동하신 삼대 고을에 속합니다. 카파르나움, 벳사이다와 함께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자리해 있었지요. 고대에는 밀 농사로 유명하여 탈무드(메나홋 85ㄱ)에도 이름을 올렸으니,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은 일로 바리사이들이 논쟁을 걸어온 곳(마태 12,1-2)도 코라진 근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코라진의 한가운데,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는 마을 회당이 있습니다. 오늘날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듯이, 이천 년 전 코라진 사람들도 회당에서 기도하고 예배 드릴 때 남쪽으로 멀리 자리한 예루살렘 성전을 향했습니다. 회당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 바로 옆에 모세오경 두루마리를 보관한 지성소의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지성소 옆에는 ‘모세의 자리’가 놓여 있고요. 진품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어 코라진에 있는 건 모조품이지만, 그곳이 바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앉았다는 높은 자리입니다(마태 23,2.6 참조). 그네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는 건, 모세 율법을 해석하는 권위자 구실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의 자리에 앉는다’는 해당 권위자를 계승한다는 뜻을 내포하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율법학자가 그곳에 앉으면 주민들은 서서 그의 말을 들었을 테지요. 모세가 재판하려고 자리에 앉으면 백성들이 그 곁에 서 있었듯이 말입니다(탈출 18,13). 하지만 예수님은 상석에 앉아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위선을 경계하라 하시며, ‘스스로를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낮추는 이는 높아지리라’고 가르치십니다(마태 23,12). 정말 말로 하는 건 쉽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요?

 

 

결국 코라진은,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기적과 말씀을 접하고도 믿음을 보이지 않아 한탄을 삽니다(마태 11,20-24; 루카 10,13-15 참조). 지금은 번성했던 과거가 무색하게 유적으로만 남았지요. 현무암으로 지어진 마을이라 몽땅 불타버린 느낌마저 줍니다. 검게 폐허 된 코라진 유적과 모세의 자리에서 우리는 겸양의 덕을 배웁니다. 불필요한 낮춤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지만 지혜로운 섬김은 그렇게 가르치신 그리스도의 향기를 퍼져 나가게 할 수 있습니다. 아카시아가 자신을 드러내려 애쓰지 않고도 향기로써 존재를 알리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겨 그분의 제자임을 세상에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구약학과에서 공부하여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하며, 수도자 신학원 등에서 구약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에제키엘서>와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이 있다.

 

[2021년 10월 17일 연중 제29주일 의정부주보 6면]